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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시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전시 후기 Part. 2: 바로크 시대의 작품들

by 티카르트 2023.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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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에서부터 이어짐>


르네상스 뒤에 이어진 바로크 시대의 작품들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전시의 초입에서부터 이어진 르네상스 시대 작품 중에, 또 귀한 작가님의 그림을 만나게 되었다. 미술 수업 들을 때, 선생님이 ‘돈을 많이 받을수록 노골적으로 작품에 혼을 갈아넣는 작가’라고 알려주셔서 머릿속에 인상 깊게 남았던 벨라스케스!
합스부르크 600년 전시에 가지 못해서 그 때 벨라스케스의 어떤 작품이 왔었는지 보지 못했었는데, 여기서 감사히 한 점 만나볼 수 있었다.


벨라스케스의 페르난도 데 발데스 대주교 초상화

 

페르난도 데 발데스 대주교, 벨라스케스 그림. 깐깐하고 엄격할 것 같은 인상이다.


검은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유행을 하던 때였던 걸까? 이 작품 역시 검은색과 붉은 색이 주로 쓰이고, 나머지 색들이 둘 사이 중간색으로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뒤에 벽이 하늘색인 것은 작품 감상을 조금 방해하는 것 같기도 한데, 작품에 비해 색이 밝아서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자신의 그림이 어떻게 걸려있는지 벨라스케스가 봤다면, 그는 이 하늘색 벽을 마음에 들어했을까?


벨라스케스 vs. 렘브란트

 

왼쪽에 벨라스케스의 그림이, 오른쪽에 렘브란트의 그림이 걸려있다. 렘브란트 그림 앞에 사람이 계속 많아서 그림 사진은 찍지 않았다.


벨라스케스 맞은 편에 렘브란트의 작품이 걸려있었는데, 렘브란트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 이유는 전시 중인 렘브란트 작품이 벨라스케스 작품보다 더 유명해서일까? 아니면 렘브란트가 벨라스케스보다 한국에서 더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일까?
전에는 그림을 보기만 했는데, 이제는 그리는 입장이 되니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줄줄이 성모

 

기도하는 성모, 사소페라토 그림. 디지털로 작업한 3D 같이 보인다.


울트라마린을 쓴 성모의 그림이 또 나타났다. 사소페라토의 그림이다. 본명은 조반니 바티스타 살비이지만, 고향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린다고 한다. 강렬한 빛의 표현이 바로크 시대의 특징 중 하나라는 것을 이 그림을 보면서 학습했다. 학교 다닐 때도 배웠던 내용인지는 전혀 기억에 없어서, 완전 새로 배우는 느낌이다.

사소페라토의 그림에서 감탄했던 부분은 손의 표현이었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손이 그림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 유화는 입체라고 하셨던 선생님의 말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노란 끼가 도는 흰 천으로 빛을 표현한 것도 너무나 멋지다.


세속적인 성모를 그린 귀도 레니

 

성 마리아 막달레나, 귀도 레니 그림.


귀도 레니의 성모는 보자마자 성모의 눈을 왜 저렇게 무섭게 그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화가 난 건지, 광기가 도는 건지 잘 모르겠는 느낌. 신한테 뭔가 따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림 설명을 보고 왜 그런지 이해가 갔는데, 도박을 좋아해 빚을 갚으려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모 그림을 많이 그렸었다고 한다. 그림도 잘 그리고, 성스럽게 여겨져 소위 당시에 잘 팔리던 성모의 그림을 많이 그려 판 것은 전업 화가로서는 굉장히 잘한 일인 것 같다. 도박 빚을 다 갚고 도박에서 벗어나는 해피 엔딩으로 갔는지는 의문이지만.

옆에서 그림을 보던 여성 두 분 중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눈이 성스럽지가 않네.”
역시, 보는 눈은 다 비슷한가보다. 어쩌면 레니가 그린 성모의 눈은 도박에 미친 본인의 눈이 아니었을까? 그림에서 그린 사람이 드러나기 마련이니 말이다.


컨셉을 잘 잡은 베케라르의 연작, 4원소

 
베케라르가 4원소인 물, 불, 공기, 흙을 주제로 로 그린 4점의 연작 중 <물>과 <불>이 전시 중에 있었다. 당시에도 그렇게 컨셉을 잡아 연작으로 그린다는 개념이 있었을까? 지금은 영화도, 책도 연작으로 나오는 작품들이 많지만, 그 때는 컨셉을 해서 기획을 한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혼자만의 아이디어로 혼자 그린 것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여튼 흥미로웠다.
 

4원소 중 <불>, 요아킴 베케라르 그림.

 
워낙 큰 그림이라, 그림을 부분부분 살펴보는 재미도 컸다. <불> 그림 가운데 있는 접시는 안 써서 얼마 전에 당근으로 판 르크루제 접시와 비슷해보였다. 그림 왼쪽에 여자가 잡고 있는 닭은 닭살이 오르게 생생하고 말이다. 고기를 거의 먹지 않는 사람으로서 조금 움찔했다.
 

어떤 무게와 느낌인지 상상이 가는 접시들.

 

닭살 돋게 잘 표현된 닭. 왠지 닭에게 미안해진다.

불을 쓰는 주방을 배경으로 하고 불이 필요한 요리 재료들이 그려져 있는 것이 재미있었다. 물살이들이 많이 그려져 있고, 그래서 색채가 다소 어두운 <물>보다는 <불>이 더 생동감 넘쳐 보였다. 
 

4원소 중 <물>, 요아힘 베케라르 그림.

 
대신, 사람들의 표정은 <불>보다 <물>에서 더 현실적으로 그려진 것 같다. 정말 부두 앞 시장에서 그림에서와 같은 표정으로 물살이들을 팔고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초상화 가운데 눈에 띄는 풍경화

 
초상화만 잔뜩 보면 눈이 피로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드문드문 풍경화도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간이 슴슴한 음식처럼 색도, 구도도 평범해보이는 그림들이었는데 말이다.
알트도르퍼의 풍경화는 16세기 초에 그려진 것이라고 하니 느낌이 색달랐다. 배경으로서의 풍경이 아닌 주인공으로서의 풍경. 귀족들이나 황실을 위한 그림이 아닌, 작가가 그리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그림들이 점점 많아지다 오늘의 현대 미술에 이른 거겠지?
 

인도교가 있는 풍경,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그림.

 
호베마의 풍경화는 실제 장면을 그린 것 같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풍경을 그린 것이라고 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현실에 있는 것을 보고 그린 것 같았다. 에드워드 호퍼도 상상 속 세계에 존재하는 그림을 현실로 구현할 때 이런 그림들의 제작 과정을 참고한 걸까? 호퍼 전시에 대해서는 내셔널 갤러리에 대한 글이 끝나면 올릴 예정이다 (포스팅을 기다리며 전시 그림 사진들이 핸드폰 사진 앨범에 잠들어 있다).  
 

작은 집이 있는 숲 풍경, 메인더르트 호베마 그림.

 
이 그림은 누가 그린 건지 잊었는데, 그림에서 맨 왼쪽에 있는 여자의 얼굴이 흙빛인 것이 신기하면서도 무서워서 찍어보았다. 여자의 얼굴, 옷 모두 어두워서 그런지 옆의 남녀가 더욱 돋보인다. 왼쪽에 있는 여자는 백인이 아닌 시녀였을까? 아니면, 남녀를 돋보이게 해주려고 일부러 얼굴까지 어둡게 그린 걸까?
 

그림의 배경처럼 보이는 맨 왼쪽 여성.

 
그렇지만 막상 그림 전체를 보면, 제일 밝은 부분은 문 바깥쪽 세상이다. 그리고, 밝은 쪽을 향해 서 있는 사람이 그림의 주인공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림을 보다 보면 대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들이 떠오른다. 사진으로 남겨놓고 지금처럼 글을 쓰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 혼자서 상상해보고, 생각하는 것이 재미있다. 저절로 두뇌 활동! 
 

그림의 전체. 크롭을 해서 보았을 때에도 보는 재미가 쏠쏠한 그림은 볼거리가 풍부한 그림인 것 같다.

 

<Part 3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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