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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시

전시 후기: 에드워드 호퍼의 고독한 세계

by 티카르트 2023.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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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엿본 에드워드 호퍼의 고독한 세계

미국인들을 포함한 많은 마니아를 거느린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를 보러 서울 시립 미술관에 다녀왔다. 그림을 좋아하고, 호퍼의 그림 실물이 궁금하다면 한 번쯤 가볼 만한 전시다. 호퍼의 대표작들이 많이 온 건 아니지만, 호퍼가 그림을 처음 시작할 때의 드로잉부터 유화 초기작, <푸른 저녁>, <뉴욕 실내>, <밤의 창문> 등 다수의 유명작을 포함해 에칭, 일러스트레이션 작품들까지 참고할만한 그림들이 꽤 있었다.
전시를 보기 전까지 화가로서의 호퍼나, 그의 개인적 삶에 대해서 잘 몰랐던 사람으로서는 그림을 통해 에드워드 호퍼라는 한 사람의 고독한 내면 세계를 엿본 기분이 들었다. 
 
 

팔찌표를 차니 콘서트 입장하는 기분이다.

 

예약 시간에 맞춰 들어가려면 여유 있게 도착하기

 
5월 3일 수요일 오후 2시 입장으로 들어갔었다. 꽤나 늦은 포스팅이 되었다. 지금은 상황이 어떤지 모르지만, 이미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예약을 했어도 시간 맞춰 들어가려면 20분 정도는 미리 도착해 있는 것이 좋다 (물론, 헐레벌떡 도착해 우왕좌왕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의 의견이니 참고만 하면 되겠다). 그때도 기다릴 때 이미 햇살이 강하고 더웠는데 요즘엔 더 덥기도 하고 비가 오는 날도 있으니 만반의 준비를 해서 가야 할 듯싶다. 오래 있을 거라면 물통을 꼭 준비해서 전시실 이동하는 사이에 충분히 수분 충전을 하며 보는 것을 추천한다.
 

5월 3일 수요일 낮 2시 입장 대기줄. 오래 기다리지 않으려면 미리 가자.

 

1층에 한해서 촬영 가능한 전시 

 
호퍼의 인기작들이 엄청 많은 건 아니지만, 전시작 중 그나마 유명한 작품들은 찍을 수가 없다. 2층부터 전시 관람을 하게 되는데, 에드워드 호퍼가 어렸을 때 드로잉 습작을 한 것들부터 보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입장에서는 이 작가가 초기에 어떤 트레이닝을 했는지 참고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는데...! 오히려 촬영하고 싶은 것들은 이런 것들인데, 사진으로 기록을 남길 수 없다니 아쉬울 따름이었다. 휘트니 뮤지엄에서 지정한 조도에 맞춰 전시가 되어서, 그림 감상하기엔 좋았다. 다만, 사람이 많으니까 보고 싶은 그림들을 오래 보려면 기다리기도 하고, 다시 돌아오기도 하는 인내심이 좀 필요하다. 
 

누드쇼를 위한 습작, 에드워드 호퍼. 1층에 전시되어 있다.

 

2층 전시실에서 오래 본 작품들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오래 보았던 작품들은 <푸른 저녁>, <퀸스보로 다리>, <뉴욕 실내>, <밤의 창문>, <오전 7시> 등이었다. <푸른 저녁>은 유리 물병의 아름다운 색깔과 피에로, 그 위로 걸린 등의 색감의 조화가 기이하면서도 예뻐서 자꾸 보게 되었다. <퀸스보로 다리> 같은 경우는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기도 했고, 뉴욕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어 참 반가웠던 작품이었다. 퀸스보로 다리가 좋아서 엄청 추운 2월에 다리를 걸어 다녔었는데, 다리의 그림을 전시에서 만나다니! <뉴욕 실내>는 여성의 성난 근육이나 자연스럽지 않게 힘이 잔뜩 들어간 몸의 움직임 같은 것들을 뒷모습으로 잡은 구도가 또 특이해서 열심히 봤다 (호퍼 전시를 보기 전에 김꼴베가 인스타라이브로 호퍼의 그림과 생애에 대해 알려준 내용들이 꽤나 도움이 되었다). <밤의 창문> 같은 경우는 어둠과 빛을 부드럽고도 극명하게 잘 표현한 것이 좋았고. 오전 7시는 그림 사이즈가 엄청 컸던 데다, 혼자서 전시장 가운데에 설치되어 있으니 그 앞에서 오래 머무르게 되었다. 볼거리가 그림 이쪽저쪽에 많다고 느꼈었던 것 같다. <이층에 내리는 햇빛>은 <오전 7시>와 조금 떨어진, 2층 전시 뒤쪽에 배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생각보다 오래 보게 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림을 올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직접 찍지 않은 그림 사진을 올릴 수는 없으니 생략한다.  
 

생각보다 흥미로웠던 1층 전시

 
촬영은 1층 전시에서만 가능해서, 흥미롭게 본 그림들을 찍어두었다. 에드워드 호퍼도 회화 작품으로 유명해지기 전, 일러스트레이션 외주 작업을 많이 했던 시기가 있었다. 유화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특유의 어두움과 무게감이 일러스트레이션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뭐가 그렇게 그로 하여금 지독한 고독을 느끼도록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누가 옆에 있든 없든 늘 고독함을 느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에드워드 호퍼가 엄청 싫어하며 그렸을 외주 일러스트레이션 중 하나.
뉴욕 에디슨 회사의 회보 표지 삽화, 에드워드 호퍼. 종이에 펜과 잉크, 불투명 수채, 연필.

 

뉴욕 에디슨 회사의 회보 표지 삽화, 에드워드 호퍼. 종이에 펜과 잉크, 불투명 수채, 연필.

 

뉴욕 에디슨 회사의 회보 표지 삽화, 에드워드 호퍼. 종이에 펜과 잉크, 투명, 불투명 수채, 연필.

 
개중에 밝다고 느껴진 것은 블루와 오렌지, 블랙과 그레이를 써서 그린 표지였다. 눈에 확 들어오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아 좋다고 느꼈다. 달을 오렌지색으로 칠할 생각을 하다니. 작업하면서 많이 지루함을 느꼈던 걸까? 어떻게 하면 좀 더 신선하게 보일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흔적이 아닐까 싶다. 외주 작업 하는 것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고 하니, 회화 작품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40대부터 쭉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살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 아닐까 싶다. 

에드워드 호퍼 그림. 회화 작품도 좋았지만, 오히려 이런 일러스트레이션도 좋았다.

 
또 다른 일러스트레이션에서도 얼굴에서 흥미로운 색깔로 볼터치를 한 것을 볼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 그림. 수채화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기에서도 유리잔이나 볼 터치 등 회화에서도 볼 수 있었던 섬세한 표현이 드러난다.

 
물론, 그런 행운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아내 조세핀 호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화상을 봐도 이미 느낄 수 있는 내성적인 성격에, 나름 사교적이어야 갤러리 전시 기회도 잡을 수 있었을 그림 세계에서 그가 유명해질 수 있었던 건 조세핀 호퍼가 그의 그림을 알아보고 갤러리에 소개를 해준 덕분이었다. 에드워드 호퍼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 조세핀 호퍼도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지 같이 기획하고, 그림의 모델이 되기도 하며, 그림이 완성된 뒤에는 그림 전시나 판매에 관여하기도 하고, 그림에 대한 기록도 세세히 남겼다. 에드워드 호퍼의 일을 도맡아 해주며 정작 조세핀 호퍼 본인의 그림은 점점 그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다른 여성이 그림 모델을 하지 못하게 하며 에드워드 호퍼에게 집착을 하게 되었었다면, 그건 조세핀 호퍼가 자신의 세계를 그림으로 펼칠 수 없어서였기도 하지 않을까. 에너지를 풀 곳이 없으면 쌓이게 되어있고, 쌓인 에너지는 분출이 되어야 하는데 꼭 건강한 방향으로 분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니 말이다. 
 

잠을 자는 조, 에드워드 호퍼.

 
에드워드 호퍼와 조세핀 호퍼의 관계성에 대해서는 1층에서 상영된 영화에서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는데, 에드워드 호퍼와 그의 작품을 다루는 영상이기 때문에 조세핀 호퍼를 바라보는 영상 제작자나 영상에 나오는 인터뷰이(interviewee)들의 시점이 다소 에드워드 호퍼에게 치우쳐져 있었을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에드워드 호퍼를 떼어놓고 한 사람,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조세핀 호퍼의 삶을 보면 슬픈 면이 없지 않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연극과 영회를 좋아해 자주 보러 다녔던 모양으로, 엄청나게 많은 티켓이 전시되어 있기도 했다. 
 

호퍼 부부가 관람한 연극 티켓 모음. 에드워드 호퍼와 조 호퍼가 연극과 영화를 보는 데 쓴 돈과 시간은 얼마나 될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여성들은 왜 고독해보일까 

전시를 보면서 여성들이 누드로 나오거나 노출을 한 채로 그려진 그림들을 보는 동안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는데, 1층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고 왜 그랬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에드워드 호퍼의 부모는 엄격한 사람들이었다고 하는데, 호퍼가 어머니와 어떤 관계였었는지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어머니와 했던 관계, 그리고 성장하면서 겪었던 여성들과의 관계에서의 경험이 - 예를 들면 짝사랑했던 상대가 그를 거절하고 다른 남성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좌절했던 경험과 같은 경험들 - 그가 여성을 표현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내성적이고 사람들 앞에서 말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다면, 더욱 그림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여성과 했던 관계의 경험이나 자신의 의견과 상관없이 본인의 성격이나 생각이 홀로 그려진 여성에게서 느껴지는 것일지도. 
 

햇빛 속의 여인, 에드워드 호퍼.

 

에드워드 호퍼의 인기작을 기대하고 가면 실망하고,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과 삶을 보러 가면 실망하지 않는다

 
호퍼의 인기작을 보러 가면 실망한다. 많이 없으니까. 그렇지만 호퍼의 그림과 삶을 보러 가면 실망할 것이 없다. 화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었던 호퍼가 보이니까. 2층에서는 에드워드 호퍼가 주로 보였지만, 1층까지 보고 나서는 호퍼의 조력자 조 호퍼의 삶에 더 눈길이 가는 전시이기도 했다. 그림을 늦게 그리기 시작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외주도 많이 해보고 40대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해 평생 사랑 받았던 화가의 삶을 그림과 함께 같이 느껴보는 것이 흥미롭고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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