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북적이는 국립중앙박물관
얼리버드로 예약한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에 다녀왔다. 봄에 티켓을 샀는데, 벌써 여름이다. 9시 50분쯤 도착했는데, 티켓 대기줄이 이미 길었다. 안내문을 제대로 읽지 않았으면 그 줄에 서서 한참을 기다릴 뻔 했다.
얼리버드 티켓은 매표소 옆 무인 키오스크에서 핸드폰 번호나 QR 코드 등을 통해 발매 가능하다. 오전 10시 입장 티켓이었는데, 들어가니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직 많지 않았다. 덕분에 보관함에 무거운 가방도 넣고 화장실도 다녀온 뒤에 여유 있게 입장할 수 있었다.
작품 순서는 시대별로
전시는 같은 층에 1실, 2실로 나뉘어져있었다. 그림을 감상하고 촬영하기에 좋은 조도였다. 내셔널 갤러리와 협의된 조도였겠지?
에드워드 호퍼전도 휘트니 측에서 지정한 조도로 했다는 설명을 봤던 기억이 난다.
이번 전시에서 작품들을 보면서 좋았던 것은 작품들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고 친절했다는 것이다. 도슨트를 따로 듣지 않아도 설명을 읽으면 어떤 재료를 썼는지, 작가가 작업할 당시의 개인적 또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내용 등을 알 수 있었다. 미술 작품들도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미술사나 유명 갤러리 등에 대한 것은 잘 모르는 상태라 큰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 하게 될 작업에 참고하면 좋을 상식도 몇 개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해, 시대별로 여러 작가의 작품들이 쭉 걸려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대부분 뒤편에 있었지만. 본 포스팅은 전시 중 Part. 1 으로, 르네상스 시대로 분류된 작품들부터 순서대로 다룬다.
종교적인 회화 작품이 주를 이룬 르네상스 시대부터 작품들을 순서대로 감상했다. 푸른색이 들어간 초상화가 좀 있었는데, 설명을 보고 울트라마린이 라피스라줄리로 만든 안료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금보다 비싼 울트라마린 (ultramarine)
울트라마린은 청록색에서 파란색까지 다양한 음영과 톤을 가진 청색 안료로, 이 시대에 사용된 천연 울트라마린은 라피스라줄리 (청금석)에서 추출된 안료라고 한다. 라피스라줄리는 동그란 입자로 구성되어 있어,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여 울트라마린 특유의 청색을 만든다. 전시에 쓰인 설명에 따르면 라피스라줄리 100g 당 4g의 안료만 추출할 수 있어 아주 귀한 안료라고 한다. 그렇게 귀한 안료여서 성모의 옷을 그리는데 주로 사용되었던 것이 아닐까? 금보다 비싸다고 하니 말이다. 울트라마린을 사용했다는 사실로 그림을 후원한 사람이 얼마나 부자인지 알 수 있고 (자본주의란!), 또 그려진 인물을 얼마나 존경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하니 재미있는 일이다.
또 재미있었던 부분은, 울트라마린과 같은 비싼 안료들이 베네치아를 통해 수입되었고, 그래서 조반니 벨리니나 티치아노와 같이 베네치아에 있는 화가들이 다른 지역의 화가들보다 쉽게 이 안료를 구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좋은 안료를 통해 그림을 그려 후대에 남았지만, 꼭 귀한 재료로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반드시 현대까지 제일 유명한 화가로 남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 부분이 재미있었던 한편, 창작자로서 가져야 하는 태도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 좋은 환경, 좋은 재료보다는 내가 무엇을 전달하고 싶고 왜 하고 싶은지 확실하게 표현을 하면 된다는 것 말이다. 여러 가지 요소가 잘 맞아야 창작자로서도 성공할 수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태도가 아닐까. 분명한 의도와 건강한 태도를 가진 사람은 오래오래 그 일을 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 작품들 중 눈길이 갔던 작품들
먼저, 작품들 사진은 아이폰으로 따로 설정 없이 무보정으로 찍었음을 밝힌다. 혹시 박물관 측 규정에 반하는 부분이 있어 사진을 내려야 하는 경우에는 언제든 내릴 예정이다 (그러나 나는 확인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작품 사진들과 함께 올린 후기들을...!).
일단, 너무 감탄스러웠던 사진, 아니 작품은 조반니 바티스타 모로니의 '여인'이다.
사진 기술이 발달해 있지 않고, 오로지 육안에 의지해 그림을 그리는데 어떻게 이렇게 사진처럼 그렸을까? 모델과 똑같이 그렸는지의 여부는 차치해두고, 옷은 정말 실제로 저렇게 윤이 반지르르하게 나는 질감을 그대로 옮긴 것만 같다. 이 그림을 보고 어떻게 저렇게 잘 그리냐고 감탄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이 그림은 베네치아에서 그려진 것으로, 콜로레(colore)를 강조한 작품이라고 되어있었다. 전시측 설명에 따르면 콜로레는 기름과 안료를 섞어 만든 유화 물감을 써서, 색을 섞거나 덧바르는 것이 용이하다. 따로 찾아보니 콜로레는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 시대에 많이 쓰인 기법이었던 듯 하다. 전시에서는 르네상스 시대로 분류되어 있었으니, 전시 중인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의 것인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전시 설명이 간략하게 잘 되어있는 덕분에, 모르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사진으로 찍어두고 후에 더 찾아보면서 알게 된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공방의 그림은 심플한 것 같으면서도 계속 눈길이 갔다. 여러 색이 쓰이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돋보이는 부분들은 더 돋보이는 것 같다. 배경이 검은색인 것이 그림의 깊이를 더 만들어내 인물이 더 앞으로 튀어나와 보이게 하는 효과를 주는 것 같다. 검은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눈에 확 띄고, 붉은색과 멀지 않은 계열의 피부색과 머리색이 중간 톤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인물이 너무 예쁘지 않아서 - 안 예쁘다는 말이 아니라, 부담스럽지 않은 예쁨이라는 뜻으로 - 더 오래 볼 수 있는 것 같다. 성향상 이런 그림은 그릴 수가 없어서 더욱 감탄하며 보았다.
얀 고사르트가 소녀를 그린 그림은, 그림 속에 이미 프레임이 있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 프레임과 비슷한 액자로 해두니 그림이 더 흥미로워졌다! 액자 속에 액자 속에 소녀가 들어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게 포장의 힘(?)인가?
그리고 그림에 다양한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전시 설명에 따르면, 그림 속 소녀인 도로테아는 혼천의의 바깥고리를 가리키고 있는데 (들고 있는 게 혼천의인지도 몰랐다), 가리키고 있는 방향이 도로테아의 아버지 크리스티안 2세가 다스렸던 나라 덴마크이고, 혼천의를 거꾸로 들고 있다는 것이 도로테아의 집안 사정이 나쁘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림을 보고 이런 뜻이 담겨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참 신기하다. 당시에는 그렇게 여러 의미를 그림에 숨겨두는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왜 그런 의미를 담아 그리게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그림으로 처한 사정을 알려야 하는 일이 있었던 걸까?
미술 공부하면서 미리 봤었던 그림은, 덕분에 그것이 카라밧지오의 작품이라는 걸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처음 이 그림을 봤을 땐 소년인 줄 몰랐는데 전시에서 설명을 보고 나서야 소년인 줄 알게 되었다. 소년이라기엔 뭔가 노안의 느낌이 강하고, 코가 빨간 것이 술 취한 사람 같아서인 것 같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잘 모르겠는 것도 있고).
도마뱀에게 물려 아파하는 건지도 제목을 보지 못했다면 몰랐을 것이다 (도마뱀처럼 보이지 않았는걸...). 이 그림에서 또 재미있었던 것은 소년(?)의 오른쪽 눈썹이 유독 진하게 보인다는 점이었다. 항상 실제로 보면서 감탄하는 점은 물감 두께가 아주 얇다는 것이다. 세필로 그리면 얼마든지 그릴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 수련하는 마음으로 그려야만 그렇게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투명한 유리잔을 불투명한 유화 물감으로 그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너무나 신기한 점이다. 사람의 손은 하고자 하면 못하는 일이 없다!
<Part. 2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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