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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시

피터 도이그, 뤽 튀망을 한 공간에서 감상하는 피노 컬렉션 - 송은 갤러리

by 티카르트 2024.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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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 컬렉션의 <컬렉션의 초상>

 

피터 도이그, 뤽 튀망의 원화를 보기 위해 갔던 전시, <컬렉션의 초상>. 피노 컬렉션에서 고른 작품 60여 점으로 구성된 전시였다. 

전시 주제 제목을 중의적인 의미로 이용하기 위해서인지, 초상화 작품이 상당히 많았다. 

사람 얼굴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에게는 참고할 거리가 많은 전시였다. 

이번에 주의 깊게 보면서 사진을 찍었던 작품들 중에는 초상화가 유독 많았다. 

 

독특하고 강렬한 인상, 미리암 칸

미리암 칸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이다.

스위스에서 태어난 작가로, 페미니즘 관련 문제 의식과 세속적인 고통을 작품에 과감하게 드러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크기는 작지만, 색채가 상당히 강렬한데다 초상의 표현도 굉장히 독특했다. 감상하고 돌아서면서도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많았다. 

 

 

왠지 로렌조 마토티가 생각나는 색채이다. 전통적인 색들이기도 해서, 강렬하긴 하지만 작가만의 고유한 색채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사라예보, 22.08.1995, 1995 - 미리암 칸

 

 

위 작품은 <사라예보>라는 제목으로,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겪고 전쟁 이후 발생한 대규모 망명과 이주의 역사를 초상으로 담아낸 작품이라고 한다. 상당히 감정적이면서도 계획된 작품이라고 느꼈다. 불필요한 폭력으로 인류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도록 의미를 담은 작품들은 미술 작품을 넘어서 역사적 가치를 지니게도 된다고 생각한다. 시각적으로 불편함을 야기한다고 해서,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해서 좋지 않은 작품이라고 함부로 결론 지을 수 없는 것이다. 미리암 칸의 작품들은 감상하기에 너무 불편하지 않게 어느 정도 계산을 해서 절제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종이에 아크릴 물감으로 작업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캔버스에 유채, 종이에 안료, 파스텔 등 다양하게 혼합해 그린 작품도 있었고 캔버스에 유채로만 그려진 작품도 있었다. 

 

 

 

위 사진에서 왼쪽 작품은 목재에 유채, 사진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한다. 작품 중 어느 부분이 목재인지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큰 사이즈의 초상, 피터 도이그 

 

보기에 진짜 불편한 건 피터 도이그 작품이다. 

 

Red Man, 2017 - 피터 도이그 (작품 상단에 초록색 두 줄은 촬영시 액자에 비친 갤러리 조명이다.)

 

꿈에 나올까봐 무서운 좀비처럼 생긴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이 피터 도이그 작품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자세히 보면 이 작품은, 콜라주 작품이다.

리플릿에 따르면 '커다란 종이에 조각조각 잘라 채색한 피지를 붙인 콜라주'라고 한다. 

 

 

 

피터 도이그는 딱 보면 피터 도이그 작품인 줄은 알겠다는 확실한 개성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몽환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왠지 모를 기괴함과 번잡함에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해서 대단한 작가가 아닌 것이 절대 아니다.

 

 

 

어쩌면 저렇게 절제된 색채로 기괴한 이미지를 깊이 있게 만들어내는지 신통할 지경이니 말이다.

 

그림 앞을 오래도록 서성이게 하는, 뤽 튀망 

 

뤽 튀망도 상당히 특이한 세계를 펼치는 작가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앞서 감상했던 미리암 칸, 피터 도이그 작품과는 분명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그건 바로 그림을 오래도록 감상하게 하는 힘이다. 

 

 

 

눈을 크게 자극하지 않는 톤다운된 색채가 일정한 방향의 붓터치로 초상을 전개한다. 

그러나 마냥 일정한 방향은 아니라서 지루하지도 않다. 

평면 위에 그려진 평면 작품이 분명하고, 마띠에르의 편차가 큰 것도 아닌데 캔버스에서 사람이 튀어나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과 눈 주변부의 색감이 상당히 아름다워서 가까이서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인물 주변 배경색은 멀리서 보면 검은색을 쓴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시커먼 검은색이 아니다.

흰색이 섞인 짙은 회색, 또는 붉은색이 도는 만들어진 검은색이다. 

 

아래 작품도 굉장히 신기했다. 

조명이 켜진 빈 무대 위를 그린 것 같은데, 또 보고 있다 보면 그냥 추상화 같기도 하다. 

 

 

 

가까이서 보면 그림에 그려진 조명의 모양과 색도 굉장히 오묘하다.

 

 

 

멀리서 보면 고른 듯 곱게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상당히 다이내믹한 붓터치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결코 감정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진 일정한 붓놀림의 느낌이다. 

 

아래 작품이 굉장히 좋았다. 

아주 오래되어 변색된 것 같은 느낌의 캔버스에 그려진 수묵화 같다. 

캔버스 위에 덧입힌 배경색일 뿐이지만.  

 

오일로 이렇게 산뜻하게 그릴 수 있다면 나도 오일로 작업을 하고 싶다. 

 

 

 

자세히 보니 단발머리 여성처럼 보여 흥미로웠던 부분. 

 

 

 

아래 작품은 참고해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작품. 

눈을 감아도 생각나는 눈빛이다. 

 

 

 

위에 다른 여성이 그려진 작품을 보면서도 생각했지만, 뤽 튀망이 그린 입술은 재미있다. 

 

 

얼굴 옆 부분도 재미있었다. 

 

 

튀망은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예술 작품이 아닌 역사와 기억, 트라우마를 기록한 그림을 그리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 작가이다. 

영화, 인터넷, 뉴스 등 다양한 미디어에서 만난 이미지들을 핸드폰이나 폴라로이드로 촬영하고, 촬영한 이미지를 보고 하루 안에 작품을 구상하고 완성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하루라고 하면 작품 하나당 하루 중 작업한 시간이 네 시간, 여덟 시간, 또는 열시간 이상일 수도 있겠다. 짧고도 긴 시간 동안 집중해서 작업을 하면서, 작업에 집중하는 작가 본인의 집중도와 작업을 하는 의도가 작품에 스며들어 관람객을 그림 앞에 오래 붙잡아두는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집중도 집중이지만, 작업을 함에 있어서 분명한 목적 의식이 있어 그 의식이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구상과 추상 사이, 질감을 부각해 표현한 루돌프 스팅겔

 

초상화는 아니었지만 질감 (texture)을 도드라지게 표현한 작품도 있었다.

반짝거리는 메탈의 느낌이 들어간 데님의 주름을 표현한 것 같이 보였다.

하나도 자극적일 게 없는 소재를 엄청나게 크게 확대해서 부각시키면 굉장히 자극적으로 느껴지고 깊게 인상에 남는 것 같다.

 

 

 

사진 같은데 일일이 그린 것이다.

리플렛을 보니 재료에 에나멜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보다 보면 그로테스크한 것도 같은데 '이걸 그렸다고?' 하면서 계속 보게 된다. 

 

 

 

입체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평면 그림인 마법. 

 

 

 

라이터가 없을 때, 신이 쳉 

 

신이 쳉이 그린 이 작품의 원제는 <For A Light II>이다. 

담배 피우러 나왔는데 라이터가 없으면 이런 일이 생기겠지, 하는 느낌으로 그려진 것 같은 그림. 

 

 

 

그림에 아무 설명이 없는데 어쩐지 젊은 작가가 그린 느낌이 폴폴 났다. 

 

 

 

확실히 크기가 큰 그림들은 톤다운된 색감일 때 눈이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지하 2층에도 작품이 있는데, 매우 신기한 작품이니 놓치지 않고 감상하면 좋겠다. 

 

피노 컬렉션 전시는 송은 갤러리에서 11월 23일까지 열린다.

자율 관람, 도슨트 투어 모두 네이버 예약으로 미리 예약해야 하는 것 같다.  

백팩은 앞으로 메고 감상하라고 안내하는데, 보다 보니 불편해서 뒤로 메게 되었다. 

화장실은 지하 1층에 있다. 이번에 송은에 갔을 때 가장 좋았던 것은 의외로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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