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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시

포레스트 요가 창시자 아나 포레스트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자유로운 영혼, 키키 스미스의 <자유 낙하>

by 티카르트 2023.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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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다녀온 전시를 무려 겨울에 올린다. 그나마도 내년 봄까지 미루지 않고 지금 올리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본 포스팅은, 봄에 다녀온 전시 직후 소셜미디어에 썼던 글을 베이스로 수정, 추가한 글임을 미리 밝힌다.  

 

어쩌다 보니 키키 스미스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시작한 날로부터 1년만에 전시 포스팅을 하게 되었다.

 

미술 전시에서 드러나는 키키 스미스의 열린 세계관 

 

그림을 배우고 있다. 선생님이 내가 했던 낙서를 보시고, 키키 스미스가 생각난다고 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니,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전시가 종료되던 마지막 주말, 키키 스미스의 전시에 다녀왔다. 

 

1층에서 처음 만난 작품들은 사진에 색을 입히거나 선을 그은 것들이 많았다. 이동하면서 점점 금속이나 유리 등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작품들이 나오면서 스미스의 세계관이 드러났다.

 

먼저, 자연에 대한 애정. 자연을 사랑하고 가까이하며 생활한다고 했는데, 자연 관련 소재들이 꽤 보였다. 

 

나뭇가지, 눈송이 등의 자연 관련 소재를 이용한 작품.

 

 

사진 위에 다른 재료로 채색한 작품.

 

여성에 대한 존중을 담아 만든 작품들도 많이 보였다.

 

이 작품에서처럼 은박, 또는 금박을 사용한 작품들이 이 작품 이후에도 많이 보였다.

 

 

아주 크고 오래된 종이 위에 작업한 작품. 여백을 활용한 흑백과 아주 약간의 푸른색, 그리고 은박.

 

 

소녀 조각상.

 

자기 자신의 몸을 사진으로 찍어 작품으로 만든 누드화는, 몸을 상업적이고 노골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소리 없이 비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포르노와 누드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키키 스미스의 작품.

 

 

이 작품 이름은 'Bossom (가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천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이미지가 주는 힘이 더 파워풀할 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기간 동안 상영되었던 비디오 영상에 따르면, 페미니즘 활동이 거세지고 있던 때에 여성을 존중하고 보호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관련 주제에 대한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책임이라고 생각했다고도 했었다. 

 

 

키키 스미스는 진지하게 작업하지만 이런 유머 감각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보다.
이런 시리즈도 재미있었다. 꼭 예쁘고 아름다워야 할 필요가 있냐는 메시지를 말하지 않고 던지는 작품.

 

인체 내부의 장기를 하나하나 정확하게 묘사한 그림과 조각 작품에서는 해부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드러난다.

 

키키 스미스는 해부학 덕후.

 

작품 설명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이 몸 안의 장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순은으로 만든 장기들.

 

인체의 장기를 그림으로 그린 경우는 많이 보았지만, 순은으로 장기를 종류별로 만들어버리는 발상과 스케일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의 소녀 작품과 마찬가지로 여백을 활용한 흑백과 노란색이 추가된 장기 그림들. 굉장히 절제되어있다.

 

작품을 만들어놓고 의미를 나중에 갖다 붙이는, 소위 꿈보다 해몽인 미술 전시도 꽤 많다. 키키 스미스의 전시는 그렇지 않았다. 작품 설명에 드러난 스미스의 의도가 명확했고, 작품에 그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설명 없이 그냥 봐도 좋은 작품들이었지만, 설명을 곁들여 보면 작품만 보고는 알 수 없었던 스미스의 깊은 생각과 더 연결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미술 전시이지만, 작품 제작에 쓴 소재도 다양하고, 작품 스타일도 다양해서 마치 박물관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뭐든 작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키키 스미스의 다양한 시도 

 

키키 스미스의 작품 하나 하나를 보면, 뭐가 그렇게 특별한가? 하고 의아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두 층에 걸쳐 여러 작품들을 보니, 왜 높게 평가되는지, 어떤 점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재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쓰는데, 과하게 느껴지거나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 없는 작품을 만든다.

 

작품의 표현 역시 사진, 콜라주, 조각, 테피스트리 등의 다양한 기법과 형태를 사용해 실험적으로 한 부분이 있다.

 

 

무섭지 않고 재미있는 광대?

 

왠지 세잔이 생각나는 사과 콜라주.

 

그러나 이 역시 과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드로잉이나 페인팅의 기법을 활용해서 적절하게 이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여기에는 당시에는 과감하다고 느껴졌을 시도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지 않게 보이게 된 영향도 있을 수 있다. 각 작품의 크기도 크기인데, 양질의 작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그가 걸어온 미술과 인생의 여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남성을 그린 작품도 드문드문 있다.

 

감정적이거나 감성적인 부분을 이용해 작품을 하기보다는, 냉철하고 꼼꼼하게 준비해 작품을 만드는 작가라는 느낌이 강했다. 서울시립미술관 1층에서 상영되었던 다큐멘터리에서의 인터뷰에 따르면, 전시 공간을 무대로 생각하고, 어떤 작품들을 어느 위치에 둘지 신중하게 결정한다고 한다.

 

2층에 있었던 조각작품. 공간이 클 때 더욱 빛나는 작품이라 어디에 무엇을 둘 것인지 고민했을 것 같다.

 

 

파노라마로 찍어보았다.

 

작품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팀으로 일을 하는데, 팀원들과 긴밀하게 조율하고 소통하면서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혼자 작업을 하든, 팀을 만들어 작업을 하든 상관은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 성향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협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스케일이 큰 작품, 그리고 많은 양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된다. 혼자 작업하고 있는 나로서는 부럽기도 하고 배우고 싶은 점이기도 했다. 

 

키키 스미스와 아나 포레스트, 두 여성이 공유하는 세계관의 범위

 

빨간 망토와 같은 동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아르테미스, 사슴과 나비, 해와 달 등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은 여성과 자연을 사랑하면 자연스레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얼굴이나 머리 스타일을 보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지만 그것도 그러려니 했다.

 

키키 스미스 본인의 사진을 활용한 작품.

 

그런데, 독수리와 순은으로 만들어진 장기를 봤을 때즈음엔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독수리 조각상.

 

키키 스미스가 포레스트 요가를 창시한 아나 포레스트와 매우 닮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둘 다 네이티브 아메리칸과 그들의 문화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재료는 잊어버렸는데 역시 엄청나게 크고 아름다웠던 독수리. 독수리는 네이티브 아메리칸 문화에서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귀한 동물이다.

 

 

포레스트 요가를 수련하며, 포레스트 요가를 전할 수 있도록 아나 포레스트와 함께 28일간의 포레스트 요가 파운데이션 티쳐 트레이닝 (Forrest Yoga Foundation Teacher Training)을 수료한 사람으로서 참 재미있는 발견을 한 셈이었다. 미술 전시에서 아나 포레스트와 비슷한 분위기, 비슷한 연령대의 미국 여성 작가를 만나다니. 

 

 

포레스트 요가를 창시한 아나 포레스트. 사진은 아나 포레스트의 책 'Fierce Medicine'의 표지이다. 출처: amazon.com

 

아나 포레스트가 몇 년간 생활했다던 선주민 주거지에서 키키 스미스가 함께 생활하며 태피스트리를 만들었다거나, 요가 수련을 같이 한 적이 있대도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요가는 하지 않지만, 키키 스미스가 집에서 자신만의 세레모니를 밤낮으로 하며 스머징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비건에 양파 마늘을 먹지 않는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서로의 집에 놀러 가 밤을 새운다면, 춤을 추고 놀거나 해부학 얘기로 꽃을 피울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아나 포레스트와 키키 스미스. 둘은 아마 살면서 한 번도 마주친 적은 없겠지? 한 번이라도 마주쳤다면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고, 좋은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그랬다면 스미스의 전시에서든 아나의 수업에서든 서로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을 리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둘은 굉장히 비슷한 관심사와 생각을 가지고 각자의 재능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아나 포레스트가 그녀의 여정과 지혜를 필터 없이 나누어준 덕분에 세계의 많은 여성들이 요가 수련을 통해 몸과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고, 스스로 두 발 딛고 서서 일어나는데 아주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물론, 남성들도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미술을 사랑하는 많은 여성 관람객과 작가 역시, 키키 스미스에게서 영감과 지지를 받고 있을 것이다.

 

 

2층에 전시되어 있었던 조각상. 요가 자세 중 하나인 전굴 (forebend) 자세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보이는 솔직한 전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두 층에 걸쳐 열린 키키 스미스의 전시, <자유낙하>는 키키 스미스라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보이는 솔직한 전시였다. 사회나 미디어에서 박제하고 끊임없이 복제해 내는 여성성, 여성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 의도로 만든 작품들이 많았다.

 

키키 스미스의 늑대 소녀. 엽서를 팔고 있어서 구매했었다.

 

빨간 망토를 푸른 망토로, 그 안의 인간 소녀를 늑대소녀로 변신시켜 버리는 창의적인 발상, 그리고 인간의 몸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장기를 무려 순은으로 만드는 대담함. 키키 스미스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특성은, 남성이 지배하는 요가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요가 스타일과 삶의 방식을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하나의 체계로 창조해 낸 아나 포레스트가 가진 특성과도 많이 닮아 있는 부분이다. 가감 없이, 서슴없이 표현하면서도 자신의 경계 (boundary)와 타인에 대한 예의를 동시에 지키는 우아함 역시 둘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넓다. 이 드넓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멋진 여성들이 정말 정말 많다. 모든 여성들이 고유의 빛을 활짝 펼치고, 사회의 중심에서 당당히 영향력을 행사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요가 수업을 나누어 온 이유 중 하나이다. 이제는 미술 창작을 통해서도 내 영혼과 마음, 몸을 통해 반짝이며 세상에 떨어지는 빛을 나누기를 고대하고 있다. 

 

포레스트 요가를 사랑하는 사람, 또는 여성으로서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고 표현하는 작품 세계를 펼치고 싶은 아티스트라면, 키키 스미스의 작품들이나 다큐멘터리를 찾아볼 것을 권한다. 키키 스미스의 생각과 작품 제작 과정이 잘 담겨있는 좋은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키키 스미스를 이미 알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나 포레스트와 포레스트 요가에 대해 찾아보는 것도 시야를 넓히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탐험이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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