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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시

파올로 살바도르, 페루 출신 작가의 <천에 새겨진 미스터리>: 스튜디오 렌카와는 다른 토속적인 작품 세계

by 티카르트 2023.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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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살바도르, 90년생 작가의 서울 첫 개인전

 

페레스프로젝트에서 9월 7일부터 11월 19일까지 열렸던 파올로 살바도르와 키얀 윌리엄스의 개인전에 다녀왔다.

전시에 갔던 날은 19일 이후였는데, 물어보니 한 주 더 연장되었다고 했다.

평일 오전에 가니 사람이 없어서, 작품 감상하기에 좋았다.

살바도르는 1층, 윌리엄스는 2층에서 전시되고 있었다.

본 포스팅에서는 살바도르 전시를 다룬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키얀 윌리엄스를 다룰 예정이다. 

 

팜플렛에는 11월 19일까지라고 되어있고, 그보다 더 연장되었다고 했다. 전시 초기엔 12일까지였나보다. 2주나 연장된 셈이다.

 

 

전시 공간은 1층이 훨씬 넓다. 2층은 두 개의 벽으로 분리되어 세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2층에서 열린 윌리엄스의 전시의 경우, 흙이 깔린 바닥을 밟아도 좋다는 안내를 미리 받았다.

어떤 전시이길래 그러는지 바로 올라가서 확인해보고 싶어지는 호기심을 누르며 파올로 살바도르의 전시를 먼저 보았다.

 

<천에 새겨진 미스터리>, 파올로 살바도르

 

파올로 살바도르는 1990년 페루 리마에서 태어났다. 페레스프로젝트에서의 개인전에는 인간과 야생동물이 등장하는 회화 그림이 여러 점 전시되어 있었다. 토착적이고 신화적인 요소들을 끌어와 그림으로 표현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인간과 동물이 같이 등장하는 살바도르의 작품. 모두 린넨에 오일 물감으로 그려졌다.

 

 

현대적인 색감에, 뭉크가 사용했을 법한 붓터치로 그려진 살바도르의 작품. 

 

<Vision en la pampilla>, 파울로 살바도르. 2023. Oil on Linen

 

 

물감을 적게 써서 두께 역시 얇다. 뭉크보다는 짧게 끊어지는 느낌의 선이지만, 끊어질 듯 길고 둥글게 이어지는 붓터치를 이용했다. 덕분에 그림에 등장하는 존재가 자연스러워 보인다. 물감을 아주 적게 써서 건식 드로잉 같은 느낌도 든다. 아래 클로즈업 사진에서 흰 부분 바깥쪽 선은 연필 선 같아 보이기도 하다. 

 

물감 두께와 연한 정도를 잘 살펴보자.

 

 

 

라틴 아메리카 출신으로 유럽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민자라는 점에서,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민자 작가인 스튜디오 렌카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살바도르와 렌카의 그림은 확연히 다른 분위기와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일우스페이스에서 전시되었던&nbsp;스튜디오 렌카의 작품.

 

 

살바도르의 그림이 누군가에겐 렌카의 작품보다 덜 인상적이고, 덜 대중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의 표정이 소위 '사진으로 찍어서 소셜 미디어에 올리기는 좀 뭐한' 느낌이 든다.

 

꿈에 나올까봐 무서운 그림 속 인물의 표정.

 

꿈에 나올까봐 무섭다던지, 본 뒤에 잔상이 남는 것이 영 불편한 면도 없지 않아 있어서, 이 부분을 볼 때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흘낏 봤다가 다시 눈을 돌려 계속 보게는 되는 강렬한 표정이기도 하다. 고전주의 회화 작품에서 많이 본 고통스러워하는 신화, 또는 성경 속 인물의 표정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크게 눈에 거슬리는 것 없이 보기 편안했던 작품. 재규어처럼 보이는 동물이 길들인 가축이 아니라 야생 동물이라는 것이 그림에서도 느껴진다.

 

정통 회화를 좋아하는 보수적인 콜렉터라면 살바도르의 그림을 더 좋아할 수도 있겠다. 페레스프로젝트처럼 좋은 갤러리에 걸린 아티스트의 그림이라면 누구의 그림이 더 좋고, 나쁘고의 문제라기보단 어떤 관람객에게 어떤 울림을 주느냐에 따라 기억에 남고 안 남고의 차이, 그리고 콜렉터에겐 사고 싶고 사고 싶지 않고의 차이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전체적인 색감에 오, 예쁜 것 같은데? 하다가 오른쪽 하단에 보이는 동물의 사나운 표정에 잠깐 놀란다.

 

 

위 그림은 재미있는 그림이었다. 아이가 낙서를 한 듯 대충 그려진 사람 주변에 역시 대충 그려진 듯한 동물들, 단정하게 아웃라인 안쪽으로 칠해진 부분과 바깥쪽으로 삐져나온 부분이 아마추어리즘을 지향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자유로운 느낌을 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마냥 자유롭지만은 않기도 한 형식이 갖춰진 그림이기도 하다. 

 

다른 그림에 비하면 준수한 표정이다.

 

 

오른쪽 위쪽에 물감 질감을 다르게 둔 것은 그림을 지루해보이지 않게 하려고 그렇게 한 걸까?

 

그림을 보면서 굳이 이게 내 취향이고 저건 내 취향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가를 이유는 없다. 살바도르와 렌카 둘 다 페인팅으로 시도해 보면 뭔가 배우는 게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회화 작품이라는 점에서, 내게는 둘 다 유의미하다. 렌카는 조금 더 대중에게 친근하고 현대적인 느낌으로, 경쾌하고 볼드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여러 브랜드와 협업하기 좋은 개성 가득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스튜디오 렌카의 작품.

 

살바도르는 미술사의 전통적인 기법들을 잘 녹이면서도 어떻게 자신만의 개성을 린넨 위에 드러내며, 그러면서도 여전히 토착적이고 영적인 분위기를 드러낼 수 있는지를 탐구한 것으로 보인다.

 

신화에 등장할 법한 두 머리 달린 동물과 인간이 그려진 그림. 동물의 한쪽 얼굴은 그림에서 밝게 칠해진 부분 중 하나이다.

 

살바도르와 렌카 둘 다 자신의 뿌리와 지금 있는 곳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그 생각들을 그림 위에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공유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스튜디오 렌카도 자연과 새, 사람을 같이 등장시키며 토속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아래 그림은 이번 개인전에서 본 작품 중 가장 색이 덜 쓰인 작품이었다. 다른 작품들에선 여러 색을 쓰기도 하고 그라데이션도 썼는데, 이 그림에선 색을 거의 쓰지 않으면서 관람객의 인상에 깊게 남기고 싶은 동물의 얼굴과 발, 꼬리만 가장 어둡게 칠하고 나머지 부분은 엷은 색으로 일부 칠하고 일부는 비워두었다. 같이 갔던 미술 선생님 말로는 이 작가로서는 아주 실험적인 시도였을 거라고 했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여러 작품들을 다시 보고 난 뒤, 그 말에 동의하게 되었다. 

 

살바도르의 이번 개인전에서 색이 가장 적게 쓰였던 그림.

 

1층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부분에 전시되어 있던 작품 중 아래 작품은 인물이 정면에 그려져 있지 않고, 비워진 중앙의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두 사람의 바깥쪽으로 위치한 나무들 덕분에 역동성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 덕분에 그림이 심심해 보이지 않게 된 것 같다.

 

판타지 영화에서 볼 법한 신비로운 장면에 그렇지 못한 무서운 눈빛.

 

앞으로 살바도르는 어떤 작품들로 서울에 돌아올까

 

서울에서 다시 전시를 하게 될 때, 살바도르는 어떤 작품들을 가지고 돌아올까? 기대되는 부분이다. 스튜디오 렌카의 경우 미국에 이주해온 이민자 학생들과 함께 작업도 하고, 패션 모델과도 협업하는 등 다양한 작업을 하는 듯 했다. 살바도르는 렌카보다 조금 더 정적이고 혼자 활동을 선호하는 작가인 것 같은 느낌이다. 앞으로도 비슷한 느낌의 작품들을 계속할까, 아니면 지금의 작품들을 베이스로 렌카처럼 협업, 또는 사람이 아닌 기타 외부 요소를 활용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될까? 다음 전시 소식을 기다려본다. 

 

<끝>

 

 

스튜디오 렌카의 2023년 일우스페이스 전시 관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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