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올로 살바도르, 90년생 작가의 서울 첫 개인전
페레스프로젝트에서 9월 7일부터 11월 19일까지 열렸던 파올로 살바도르와 키얀 윌리엄스의 개인전에 다녀왔다.
전시에 갔던 날은 19일 이후였는데, 물어보니 한 주 더 연장되었다고 했다.
평일 오전에 가니 사람이 없어서, 작품 감상하기에 좋았다.
살바도르는 1층, 윌리엄스는 2층에서 전시되고 있었다.
본 포스팅에서는 살바도르 전시를 다룬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키얀 윌리엄스를 다룰 예정이다.
전시 공간은 1층이 훨씬 넓다. 2층은 두 개의 벽으로 분리되어 세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2층에서 열린 윌리엄스의 전시의 경우, 흙이 깔린 바닥을 밟아도 좋다는 안내를 미리 받았다.
어떤 전시이길래 그러는지 바로 올라가서 확인해보고 싶어지는 호기심을 누르며 파올로 살바도르의 전시를 먼저 보았다.
<천에 새겨진 미스터리>, 파올로 살바도르
파올로 살바도르는 1990년 페루 리마에서 태어났다. 페레스프로젝트에서의 개인전에는 인간과 야생동물이 등장하는 회화 그림이 여러 점 전시되어 있었다. 토착적이고 신화적인 요소들을 끌어와 그림으로 표현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현대적인 색감에, 뭉크가 사용했을 법한 붓터치로 그려진 살바도르의 작품.
물감을 적게 써서 두께 역시 얇다. 뭉크보다는 짧게 끊어지는 느낌의 선이지만, 끊어질 듯 길고 둥글게 이어지는 붓터치를 이용했다. 덕분에 그림에 등장하는 존재가 자연스러워 보인다. 물감을 아주 적게 써서 건식 드로잉 같은 느낌도 든다. 아래 클로즈업 사진에서 흰 부분 바깥쪽 선은 연필 선 같아 보이기도 하다.
라틴 아메리카 출신으로 유럽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민자라는 점에서,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민자 작가인 스튜디오 렌카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살바도르와 렌카의 그림은 확연히 다른 분위기와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살바도르의 그림이 누군가에겐 렌카의 작품보다 덜 인상적이고, 덜 대중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의 표정이 소위 '사진으로 찍어서 소셜 미디어에 올리기는 좀 뭐한' 느낌이 든다.
꿈에 나올까봐 무섭다던지, 본 뒤에 잔상이 남는 것이 영 불편한 면도 없지 않아 있어서, 이 부분을 볼 때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흘낏 봤다가 다시 눈을 돌려 계속 보게는 되는 강렬한 표정이기도 하다. 고전주의 회화 작품에서 많이 본 고통스러워하는 신화, 또는 성경 속 인물의 표정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정통 회화를 좋아하는 보수적인 콜렉터라면 살바도르의 그림을 더 좋아할 수도 있겠다. 페레스프로젝트처럼 좋은 갤러리에 걸린 아티스트의 그림이라면 누구의 그림이 더 좋고, 나쁘고의 문제라기보단 어떤 관람객에게 어떤 울림을 주느냐에 따라 기억에 남고 안 남고의 차이, 그리고 콜렉터에겐 사고 싶고 사고 싶지 않고의 차이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위 그림은 재미있는 그림이었다. 아이가 낙서를 한 듯 대충 그려진 사람 주변에 역시 대충 그려진 듯한 동물들, 단정하게 아웃라인 안쪽으로 칠해진 부분과 바깥쪽으로 삐져나온 부분이 아마추어리즘을 지향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자유로운 느낌을 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마냥 자유롭지만은 않기도 한 형식이 갖춰진 그림이기도 하다.
그림을 보면서 굳이 이게 내 취향이고 저건 내 취향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가를 이유는 없다. 살바도르와 렌카 둘 다 페인팅으로 시도해 보면 뭔가 배우는 게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회화 작품이라는 점에서, 내게는 둘 다 유의미하다. 렌카는 조금 더 대중에게 친근하고 현대적인 느낌으로, 경쾌하고 볼드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여러 브랜드와 협업하기 좋은 개성 가득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살바도르는 미술사의 전통적인 기법들을 잘 녹이면서도 어떻게 자신만의 개성을 린넨 위에 드러내며, 그러면서도 여전히 토착적이고 영적인 분위기를 드러낼 수 있는지를 탐구한 것으로 보인다.
살바도르와 렌카 둘 다 자신의 뿌리와 지금 있는 곳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그 생각들을 그림 위에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공유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아래 그림은 이번 개인전에서 본 작품 중 가장 색이 덜 쓰인 작품이었다. 다른 작품들에선 여러 색을 쓰기도 하고 그라데이션도 썼는데, 이 그림에선 색을 거의 쓰지 않으면서 관람객의 인상에 깊게 남기고 싶은 동물의 얼굴과 발, 꼬리만 가장 어둡게 칠하고 나머지 부분은 엷은 색으로 일부 칠하고 일부는 비워두었다. 같이 갔던 미술 선생님 말로는 이 작가로서는 아주 실험적인 시도였을 거라고 했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여러 작품들을 다시 보고 난 뒤, 그 말에 동의하게 되었다.
1층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부분에 전시되어 있던 작품 중 아래 작품은 인물이 정면에 그려져 있지 않고, 비워진 중앙의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두 사람의 바깥쪽으로 위치한 나무들 덕분에 역동성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 덕분에 그림이 심심해 보이지 않게 된 것 같다.
앞으로 살바도르는 어떤 작품들로 서울에 돌아올까
서울에서 다시 전시를 하게 될 때, 살바도르는 어떤 작품들을 가지고 돌아올까? 기대되는 부분이다. 스튜디오 렌카의 경우 미국에 이주해온 이민자 학생들과 함께 작업도 하고, 패션 모델과도 협업하는 등 다양한 작업을 하는 듯 했다. 살바도르는 렌카보다 조금 더 정적이고 혼자 활동을 선호하는 작가인 것 같은 느낌이다. 앞으로도 비슷한 느낌의 작품들을 계속할까, 아니면 지금의 작품들을 베이스로 렌카처럼 협업, 또는 사람이 아닌 기타 외부 요소를 활용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될까? 다음 전시 소식을 기다려본다.
<끝>
스튜디오 렌카의 2023년 일우스페이스 전시 관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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