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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시

쾌활하고 따뜻한 남인도의 불교 미술, 신비로운 스투파의 숲

by 티카르트 2024.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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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추천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는 불교 미술 전시에 다녀왔다.
전시 이름은 <스투파의 숲>. "스투파의 숲이 뭐야?" 하는 생각과 함께 흥미가 생기는 제목이었다.
간단한데 재치 있고, 아름다운 제목이다. 전시 이름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름다운 전시 포스터.

 
딱딱한 불교 미술이라기보단 자연과 교감하며 쾌활한 느낌이 살아있는, 그러면서도 따뜻한 분위기의 불상들이 많았다.
 

조각된 사람들이 표정이 개구지다.&nbsp;그냥 보면 돌조각이지만, 기원전 5세기경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 대단하다.

 
 
조각 전시라서 오래 볼까 싶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상했다.
한 번 보고, 또 보면서 그 어떤 미술 전시에 갔을 때보다도 사진을 많이 찍었다. 
(나중에는 배터리가 없어서 전시를 나오게 되었다.)
 
사람이 없을 때 가고 싶다면 오전에 가거나, 도슨트가 진행되는 시간을 미리 알아두었다가 피해 가는 것이 좋겠다. 
 

'스투파'는 무엇인가?

 
스투파는 부처나 승려의 사리를 모신 탑을 의미하는 인도의 옛말*이다. 탑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절에서 보는 탑처럼 생긴 것은 아니다. 둥근언덕, 내지는 커다란 왕릉의 모양을 하고 있다.
 

스투파의 모양. 인도에서 온전한 모양의 스투파를 볼 수 있는 곳은 산가치뿐이라고 한다 (산가치라고 영상에서 보았는데,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이름은 어디서 들어본 듯 낯설지 않은데, 뜻을 몰랐던 단어 '스투파.'
그 정확한 의미를 이번 전시 덕분에 알게 되었다. 앞으로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 인도에서도 현대 사회에서 쓰는 말과 옛말이 있다. 인도의 옛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는 언어이다. 
 

1실: 자연이 살아 숨쉬는 남인도의 불교 조각상들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남인도 스투파의 고향.

 
 
1실에서 시작되는 전시는 불교가 인도의 남쪽으로 건너가 꽃피기 시작하는 불교 미술을 보여준다. 기원전 5세기경, 인도 북부 갠지스강 부근에서 시작된 불교. 부처가 되기 전, 청년 석가모니가 자란 곳과는 날씨도, 문화도 다른 먼 남부로 건너간 불교가 생명력을 얻기 시작하는 것을 여러 조각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불교 미술이라고 해서 종교적이고 경건한 느낌보다는, 쾌활하고 유머러스한 느낌이 드는 조각들이 꽤 있었다. 
 

입에서 연꽃 덩쿨을 뿜어내는 자연의 정령이라고 한다.

 
 
 
마침 남인도에 다녀온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이 전시를 보게 되니 아주 흥미로웠다.
특히, 방문했었던 안드라프라데쉬에서 온 작품들이 많아서 더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피어나는 연꽃과, 그 위에 그려진 한 쌍의 함사.

 
 
 
함사는 히말라야에서도 아주 높은 곳에서만 볼 수 있다는, 독수리보다도 더 높게 난다고 알려진 전설 속의 새라고 들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용맹하게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조각에선 생각보다 아담하고 귀엽게 그려져 함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조각과 조명, 뒤의 벽 색깔이 모두 잘 어울렸다. 색이 차분해서 조각을 감상하기에 더욱 좋았다.
 
 

오른쪽 작품은 상당히 현대적인 느낌이 든다.

 
 
 
 
또 다른 연꽃과 함사 그림. 이 전시에서 몇 안 되는 회화 작품의 일부이다. 왼쪽 그림이 고전적이라면, 오른쪽 작품은 상당히 현대적인 느낌이 든다.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그려진 그림에 붉은색 아웃라인이라...?
요즘에야 이런 식으로 그려진 그림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 때 당시에는 흔치 않은 스타일의 작품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출산과 풍요의 신, 락쉬미. 
 
 
 
모든 면에 다 조각이 들어가 있어 조각 주변을 돌며 감상했다.
처음엔 사진 찍기 바빴는데, 보다 보니 정말 살아있는 여신 같았다.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해달라고 속으로 말을 걸었다. 왠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는 것 같기도 하고.
당시엔 몰랐는데, 집에 돌아와 찍어둔 사진을 보니 상당히 요염한 느낌도 있다.
 

전설 속 동물, 마카라. 물 속에 사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불교가 전해진 당시 남인도에는 전설의 동물도 많았다고 한다.
마카라는 물 속에 사는 동물인데, 불교가 전해진 뒤로는 불교의 수호신이 된 모양이다. 우리나라 절에서 산신이나 호랑이의 상을 불상 옆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1실의 전시는 특히 현대 영상 미술과 잘 어우러지게 해서 조각상을 돋보이게 한 점이 재미있는 전시였다.
아래 사진이 그 예이다. 조각상과 동전이 떨어지는 영상이 나란히 놓인 것을 찍었다. 
조각상과 영상이 절묘하게 만나는 위치에 놓이면서도, 크게 위화감 없게 잘 어울린다.
그렇기 때문에 조각상, 영상이 서로 시너지를 내며 재미있어지는 케이스로 보인다. 
 

동전을 쏟아내는 연꽃 모자를 쓴 약샤. 기원전 3세기 말.

 
인도라고 생각하면 오래된 문화, 또는 덜 발전된 먼 나라에 소와 차가 한 도로에 다니고 흙먼지 인 풍경 등을 떠올리게도 되는데 
현대의 디지털 영상, 음악 등과 함께 놓으니 조각상의 분위기도 달라 보이고, 상당히 현대적인 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또 흥미로웠던 것은, 인도 불교 사원지 발굴을 기념하며 프랑스에서 그린 전시 포스터였다. 
 

1938년경 그려진 파리 기메박물관 포스터.

 
만든 시기는 1938년으로, 프랑스 고고학조사단이 발굴한 불교 사원지를 기념하는 특별전이 열렸을 때 만들어진 포스터라고 한다.
 

약간 디즈니 느낌이 난다.

 
인도의 여인들이 현대적인 서양의 톤으로, 절제된 색감으로 그려진 것이 썩 흥미로웠다.
지금 시도해보고 있는 작업과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느낌도 재미있었다. 
 

2실: 부처의 사리가 모셔진 전시 

 
숲 속을 걷는 것 같고, 쾌활하며 가벼웠던 1실. 2실에선 분위기가 살짝 바뀌어, 조금 더 차분하고 고요해진다. 
사리를 담은 상자를 머리 위에 얹고 나르는 코끼리, 사리 단지, 그리고 실제 사리를 담는 사리병을 볼 수 있다.
 

사리를 담은 상자를 머리 위에 얹고 나르는 코끼리.&nbsp;남인도의 코끼리라 그런지 여전히 쾌활은 하다.

 
 

동물이 조각된 사리 단지.

 
 
사리병의 경우, 수정으로 만드는 건줄 몰랐는데 참 예뻐서 계속 보게 되었다.
 

수정으로 만들어진 사리병.

 
남인도에 갔을 때 방문했던 명상 학교 사원의 돔 부분과 사리병이 비슷하게 생겨서 상당히 놀라기도 했다.
사원이 나중에 지어진 것이니, 사리병의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었을까 싶기도 하고.
인도 고대에서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어떤 전통 문양, 또는 기하학인지도 모르겠다.
 
부처의 사리도 있다. 전시에서 실제로 사리를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부처의 사리를 담았던 사리함에서 나온 사리와 각종 보석들.

 
사리와 함께 들어있었다는 아기자기한 꽃, 각양각색의 보석도 아주 아름다웠다. 
명품백은 필요 없는데 저건 좀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리가 중앙에 떡 하니 있는데도, 사리 주변으로 원을 그리고 있는 보석들에 시선이 자꾸 갔다.
두 바퀴째 감상할 때가 되어서야 사리를 제대로 관찰할 수 있었다.
 
명상할 때와 비슷한 경험을 한 느낌이다. 
머리를 어지럽히는 생각들에 시선을 빼앗겨 정신 사나워하다가,
왜 그런 생각들이 들었는지 그 근본이 되는 뿌리는 한참 나중에 보게 되는. 
그리고 자유로워지는. 
 
 

석가모니, 부처가 되다 

 
스투파에는 석가모니가 부처가 되는 과정을 그린, 하나의 이야기가 조각으로 담긴다.
전시에 석가모니의 생애를 줄거리처럼 짧게 요약해 둔 내용이 있어, 숙지하면 내용을 따라가며 작품을 감상하기 쉽다.
 
석가모니가 태어나, 출가를 하고, 궁을 떠나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수행의 시작을 선언한다.
 
깨닫기 직전 마라의 방해를 받고, 깨달음을 음미하며 산책한다. 
 

마왕 마라의 방해를 받는 석가모니. 마라가 여덟 마리(?!)나 있다.

 
사천왕이 발우를 공양하고, 제자들에게 설법을 시작한다. 
 
도리천에 가서 어머니였던 마야 부인을 만나 설법을 전한다.
 
열반에 든 후 부처의 사리가 스투파에 모셔지고, 사리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난다.
 
사리 가지고 싸우라고 설법하고 돌아다닌 건 아닐텐데, 부처가 이를 알았으면 혀를 끌끌 찼을 듯.
 
 
석가모니의 현생 뿐만 아니라, 전생 이야기가 나와있는 스투파도 있다. 
토끼였던 전생도 있었다니! 몰랐던 사실을 배웠다.
 
 
 

90여 점이 넘는 풍요로운 조각 전시 

 
이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불상들이 있었다. 
해외에 직접 가서 보려면 먼 길을 가야 하는데, 친절히 한 자리에 모아져 있어서 감사히, 재미있게 보았다. 
전시 관람 비용도 10,000원으로 영화 한 편 보는 것보다, 책 한 권 사는 것보다 싼 비용이니 아주 감사한 일이다. 
 
박물관에서 하는 전시는 미술 전시와 달리 고루하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1실에서 2실로 넘어갈 때 보이는 포스터. 심플하면서 멋지다.

 
이번 전시는 포스터부터 현대적이고도 신비로운 느낌이 느껴지고,
전시 자체도 스투파 감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쉬운 설명을 곁들여 잘 만들어져 있어 참 좋았다. 
 
여러 가지로 풍요로움이 넘친다고 느껴졌던 전시였다.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가서 보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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