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함: 깨달음을 담다>展
리움 미술관에 가면 현대 미술 전시 외에도, 리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미술품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지난달에는 M1관에 가니 늘 볼 수 있는 소장 미술품과 함께 <감지금니 묘법연화경>을 만날 수 있었다. 묘법연화경은 <전∙함: 깨달음을 담다>展이라는 이름 아래 전시 중이다.
<감지금니 묘법연화경>은 왜 만들어졌는가
이 사경은 고려 충목왕 1년 당시였던 1345년에, 진한국대부인 김씨가 충혜왕의 영가천도를 기원하며 충목왕, 그리고 그의 모후였던 덕녕공주를 축원하고자 만들어졌다고 한다. 왕실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지만, 사경인만큼 깨달음에 대한 염원 또한 담겨 있다. 사경에 쓰인 모든 글과 그림은 금으로 쓰고, 그려졌다. 전시에서는 묘법연화경 7권 전체를 감상할 수 있는데, 보고 있으면 글도 그림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크면, 돈도 시간도 공도 아끼지 않고 모두 갈아 넣어 이렇게까지 완벽하고 아름다운 사경을 완성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종교 미술은 낭비인가
왜 종교미술에 재원을 낭비하나, 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보다 더 실용적인 목적으로 쓰면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탐미적인 인간의 성향은 잘못하면 중독과 쾌락, 낭비로 빠질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올바르게 쓰이면 이 성향은 예술 작품을 만드는 당사자들이 각자의 한계를 넘으며 깊은 몰입의 상태로 들어가도록 한다. 더 나아가서는 작품이 완성된 후에 그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을 창작자 개개인이 경험했던 상태로 이끌기도 한다.
종교 미술의 경우, 작품이 창작자 본인의 에고 강화, 돈벌이 등 자기 자신만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 창작자 개인의 개성이 들어가 있다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기도하고 염원하는 마음이 들어갔으니 그들의 숨이 들어가 있지 않다고 보기도 어렵다.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의 능력을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을 찬양하고 신도들의 깨달음을 바라며 작품을 남긴 것이기도 하니 이타적이다. 그들이 남긴 작품은 오랜 시간동안 당시의 현대와 미래의 후대까지 기쁘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는 예술 작품으로 남기도 한다. 고분 벽화가 있었을 아주 오랜 옛날부터, 문자와 기록을 위해 그린 그림, 그리고 종교 미술을 지나왔기 때문에 지금의 현대 미술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니, 종교 미술을 낭비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역시 제작 당시에는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으나, 한참 후대의 후손으로서는 이 사경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운이 좋고 감사한 일이라고 느꼈다. 사경의 각 권마다 담겨 있는 그림들을 보면 상당히 일러스트레이션과 유사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아 흥미롭기도 했다.
사경을 담고 있는 경함도 습도에 취약한 나무라는 재료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변형 없이 원래의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 신기했다. 수만 개의 나전 조각을 이어붙이고, 옻칠을 여러 번 하고도 울퉁불퉁하지 않고 깔끔한 표면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경함이 훼손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경 역시 안전하게 보관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정말 중요한 것은 깨달음에 대한 지혜를 담고 있는 사경이지만, 이에 비해 다소 부수적이라 생각될 수 있는 보관함도 정성 들여 만든 것을 보면 무엇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경이로움과 고요함으로 마음이 채워졌던 전시
표면적으로만 보면 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정말 오래되었다는 것이 전부인 전시이다. 그러나 사경을 앞에 두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어떻게 그렇게 일관된 선으로 부처와 보살, 절을 그렸는지, 글씨는 또 어쩌면 그렇게 고르게 쓸 수 있었는지 그 정성과 집중도에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게 되는 전시였다. 저절로 마음이 고요해졌다. 뭔가 한 게 없는데 굉장히 많이 채워진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정갈하고 화려하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작품이 아니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날 먼저 보았던 아니카 이 전시보다 본 전시가 훨씬 더 좋게 느껴졌었다. 전시 종료 전에 한 번 더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본 전시는 2025년 2월 23일까지 열린다.
<끝>
아니카 이 전시: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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