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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시

경쾌한데 원시적이고 힙한 감성, 스튜디오 렌카 개인전

by 티카르트 2023.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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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록: 대한 항공 일우스페이스에서 열린 스튜디오 렌카 개인전

 

3월에 다녀온 스튜디오 렌카 (Studio Lenca)의 개인전, 플록 (Flock). 2023년 2월 10일부터 3월 17일까지 대한 항공 일우스페이스에서 열렸던 기획초대전이다. 미술 선생님의 추천으로 스튜디오 렌카를 알게 되고, 마침 전시회가 있어 전시하던 마지막 주에 운 좋게 다녀올 수 있었다. 시원시원한 그림체와 선명한 색감, 그리고 작가 개인의 의미를 담은 상징을 보는 재미가 있었던 미술 전시였다. 일우스페이스는 대한 항공 회사 건물 1층에 위치한 갤러리로 아주 넓은 공간은 아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꾸밈없이 깔끔해서, 스튜디오 렌카의 그림들을 감상하기엔 좋은 공간이었다.

 

대한 항공 일우스페이스에서 열린 스튜디오 렌카의 전시.

 

미술 전시 이름이 플록인 이유

 

플록 (Flock)의 사전적 의미는 '무리,' '떼'이다. 스튜디오 렌카는 사람들의 무리, 떼라는 의미를 담아 플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작가 작품 전반에 드러나는 이민, 이주, 소속감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대한 항공에서 열린 개인전은 아시아에서 열린 스튜디오 렌카의 두 번째 전시였다.  

 

시선을 잡아끄는 시원시원한 그림체와 색감 

 

전시된 스튜디오 렌카의 작품들에는 모두 인물화였다. 산과 태양, 달, 새, 나무가 등장하기도 한다. 큰 사이즈의 캔버스에 큼직큼직하게 그려진 인물이 시선을 잡아끄는 느낌이었다.

 

시원시원한 그림체와 경쾌한 색감. 생동감이 느껴진다.

쉽게 쉽게 그렸을 것 같기도 하고, 그리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을 것도 같은 그림들이다. 원색과 파스텔톤의 색이 많이 쓰였는데, 강렬하면서도 한 번 보고 바로 질리는 느낌은 아니다. 그림을 여러 번 보면서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 있다. 큰 공간이 있다면 벽에 걸어놓으면 멋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파스텔톤과 원색이 섞인 강렬한 색감.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스튜디오 렌카라고 서명인 듯 브랜드인 듯 쓰여 있는 것도 재미있다.

 

그림은 모두 아크릴 물감과 유화 물감을 사용해서 그렸다고 되어있었다. 채색을 하고 물감이 흘러내리면서 마른 자국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림을 가까이서도 볼 수 있어서 요리조리 뜯어보았는데, 아크릴 물감을 유화 물감보다 더 많이 쓴 것 같이 보였다. 강렬한 색상이 많이 쓰인 것에 비해 눈이 아프거나 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수성 재료가 쓰여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원화를 볼 때 물감이 흐른 자국, 마르면서 갈라진 흔적 등을 보는 재미가 있다.

 

전시에 다녀오고 나서 미술 선생님에게 물어봤는데, 아크릴과 유화 물감을 둘 다 썼다면 아크릴로 먼저 작업을 하고 유화 물감으로 마무리를 했을 거라고 했다. 아크릴은 수성이라 유화 물감 위엔 올라가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아크릴 물감은 아직 써보지 않아서 내게는 미지의 세계다. 나중에 그림 작업할 때 참고해야겠다. 스튜디오 렌카 같은 느낌을 낼 수 있다면 둘 다 쓰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색감만 보면 디지털 작품 같은데, 보면 볼수록 수작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고, 그래서 정감이 가는 현대 미술 회화 작품의 느낌으로 말이다. 

 

이 정도 물감이 흘렀으면 일부러 흐르게 했고, 갈라지는 느낌도 그림에 의외성을 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사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쓰인 패턴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의 분위기

 

볼 때는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큼직한 몸통에 어떤 패턴이 들어갔는지에 따라 그림의 분위가 확 달라보이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특히 전시 입구에 있었던 그림은 색감보다도 옷에 그려진 패턴 때문에 눈에 확 들어왔던 작품이었다. 일관성이 느껴지진 않는데 그래서 자유롭게 살아있는 것 같고, 원시적인 느낌이었다. 바스키아 같기도 하고.

 

전시 입구에 있었던 그림. 스튜디오 렌카. 152 * 22cm 규모의 큰 작품이다.

 

땡땡이 패턴은 쿠사마 야요이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땡땡이를 썼다고 똑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으니 새로운 느낌이었다. 

 

쿠사마 야요이가 생각나는, 하지만 다른 땡땡이.

 

나무뿌리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것 같은 느낌의 무늬는 패턴이 아니면서 패턴인 것으로 보였다. 여러 그림에 걸쳐서 나타난 무늬였기 때문이다. 뭔가 기괴한 느낌이 들면서도 생명력이 느껴지는, 살아있는 그림들로 느껴졌다. 스튜디오 렌카의 에너지는 이런 것인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흡사 핏줄과도 같아 보이는 나무 뿌리. 패턴이 아닌데 패턴이다. 자꾸 보게 된다.

 

인물 자체가 거대한 산처럼 보이는 그림도 있었다. 선보다는 면을 분할한 색의 대비와 구성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는데, 인물 양 옆에 있는 것이 내게는 두 개의 태양처럼 보이기도 하고 태양과 달 같기도 했다.

 

 

작가는 아마도 자연을 좋아하고, 자연과 사람의 연결성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까? 왠지 작가가 미국에 오기 전 살았던 고향은 더 자연에 가까운 환경이었을 것 같다.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의미를 몰라도 즐길 수 있는 상징

 

렌카의 그림에는 새가 많이 등장한다. 인물의 어깨 위에 앉아있기도 하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기도 하고. 새는 나무에 둥지를 짓고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우기도 하지만, 철마다 무리 지어 이동해서 다른 곳에서 지내기도 한다. 가족들과 함께 고향이 아닌 타국으로 와서 생활하는 작가로서는 새를 보면서 느끼는 의미가 남달랐던 것이 아닐까 싶다.

 

새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스튜디오 렌카의 그림. 모든 새들이 각기 다르게 생긴 것이, 각자 고유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새인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그렸으면서도 독특한 느낌을 담은 것이 창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는 인류에게 친숙한 동물이라 새에 담긴 보편적인 의미도 잘 알려져 있어 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머리 아프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는 상징이다. 그리고 작가가 새를 그리며 담은 의미를 알지 못해도 보는 것만으로 즐거워지기도 하니, 참 잘 골랐다는 생각도 든다. 정작 그리는 입장에서는 본능적으로 그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꼭 머리 아프게 고민하지 않아도 좋은 결과물은 나오게 마련이다. 

 

스튜디오 렌카는

 

본 전시의 작품들을 더 잘 이해하려면 작가인 스튜디오 렌카에 대해서 알아두면 좋다. 스튜디오 렌카라는 예명부터가 의미가 있다. 스튜디오는 실험하는 공간, 그리고 렌카는 온두라스 남서부와 엘살바도르 동부의 메소아메리카 토착민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렌카는 작가 자신의 뿌리가 있는 지역인 것이다. 스튜디오 렌카의 본명은 호세 캄포스 (Jose Campos)이다.

 

그림에는 작가가 불법 체류자로 살았던 성장기의 경험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무리를 찾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던 그의 개인적 내러티브가 담겨있다. 일우스페이스의 전시 설명에 따르면, "본 전시는 작가의 이주 과정에서 만난 새들과 풍경이라는 소재를 활용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자전적 여정을 탐구하고자 하였다." 

 

엘살바도르에서 이주,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로 시작해 미국 국적을 가지고 터를 잡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생존기였을 것이다. 스튜디오 렌카는 어려움을 지나 어려웠던 경험을 담아내는 작가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미국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라틴계 난민들이 있다. 그의 그림 세계는 해결되지 못한 난민 문제를 담고 있기도 하다. 

 

얼핏 보면 사진 찍기에 예쁜 그림인 것만 같다. 막상 생존과 적응의 시기를 거치면서 나온 그림들인 것을 알게 되니,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건 아니지만 나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며 소속감이 없는 불안함과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가 떠오르면서 또 그림을 보는 기분이 달라진다. 점점 모국을 떠나 이민을 가고, 타국에서 생활하는 인구가 많아지는 추세다. 타국에서 살고 있거나 살았던 경험이 있는 다른 사람들도 작가의 그림을 보면서 각자 여러 생각과 감정을 만나겠지? 

 

새로운 전시를 하면 또 보러 갈 그림

 

베이지 톤의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들도 꽤 있었고, 마냥 밝은 색감만 있지는 않아서 깊이가 느껴지면서도 경쾌한 그림들이었다.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따뜻한 감성이 있었다. 그림에 담긴 부족적이고 원시적인 정서에서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었다. 작가처럼 좋은 현대 미술 작품을 창작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한국에서 새로운 전시가 열리면 또 보러 갈 것이다! 스튜디오 렌카의 앞으로의 활동을 응원하고 기대한다. 

 

<끝>

 

* 스튜디오 렌카 그림 판매 사이트 (작가 소개, 전시 정보, 작품 판매 정보 등이 나와있다).

 

https://www.artsy.net/artist/studio-lenca?page=2 

 

Studio Lenca - Biography, Shows, Articles & More | Art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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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arts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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