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스코의 신비로운 추상 세계를 태어나게 한 생각들 - <예술가의 창조적 진실>
마크 로스코는 20세기의 추상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이다.
태어난 건 러시아지만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주, 뉴욕을 기반으로 예술 활동을 펼쳤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이전까지 출간한 책은 없었던 마크 로스코였지만,
사망 이후 아들인 크리스토퍼 로스코가 발견한 글들이 출판되었다.
마크 로스코의 유일한 책 <예술가의 창조적 진실>은 그의 아들 크리스토퍼 로스코가 엮고,
대중들이 아버지의 의견을 잘 받아들일 수 있겠다고 판단한 시기에 출판되었다고 한다.
묵직한 내용으로 사고하게 하는 책, <예술가의 창조적 진실>
3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두께로 예상할 수 있지만, <예술가의 창조적 진실>은 묵직한 내용으로 독자를 사고하게 하는 책이다.
마크 로스코가 어떤 생각을 했길래, 그토록 신비롭고도 뚝심 있는 추상 세계를 펼칠 수 있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책을 보면서 새롭게 배우게 된 부분과 숙고하게 된 부분은 아래와 같다.
1. 색의 회화적 기능
비전공자로서 그리는 그림은 미숙하다. 알고 있는 이론이 빈약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금방 깨우칠 수 있는 부분일 수도 있는데, 마크 로스코가 쉽게 설명한 덕분에 색이 가지는 회화적 기능을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었다.
색이 가진 회화적 기능에는
앞으로 튀어나와 보이는 전진과
뒤로 물러나는 후퇴의 느낌이 포함된다.
이는 마크 로스코가 자신의 작품을 작업할 때 주요하게 활용한 개념이라고 하니, 그의 작품에 끌리는 이유, 오래 보게 되는 이유를 이해하고 싶다면 두고두고 숙고해 볼 만한 부분이다.

색에 대해서는 뒤에서도 또 언급이 되는데, 아래 페이지의 내용도 참고해볼만 하다.

2. 영감의 특성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다. 정확한 것, 사실에 기반한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뉴스와 과학만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상당히 지루할 것이다. 뉴스는 사실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과학도 논리적인 것 같지만, 그 속에 환상과 신성을 품고 있다.
마크 로스코는 '정상적인' 사고를 해서는 비범한 영감을 얻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의하는 바이다. 옳고 그르다고 생각한 것, 사회에서 주입받은 이념, 좋고 싫은 것을 떠나 땅에서 뿌리 뽑힌 나무가 공기 중에 떠 다니는 정도로 부유해도 괜찮은,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을 때 영감은 온다. 마크 로스코에게 영감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란,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로 잰 듯 정확한 과학을 신봉하면서도 판타지를 놓지 못하는 것은, 로스코의 말대로 영감을 통해 세상에 태어난 것들을 "존경하는 마음" 때문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는 상식적인 범주 내에서 생활해야 하는 것이 맞겠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물론 안될 일이고), 비범한 창작을 하려면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어느 지점에 머무를 줄도 알아야 한다. 그 지점은, 아주 섬세하고 예민하여 사람들이 미처 지각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부분들이다.

3. 가난할 수 있는 자유
"가난할 수 있는 자유."
로스코가 한 말 중 정말 기발하면서 대단하다고 수긍하게 된 부분이었다. 물질만능주의가 판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 창작을 한다는 것은 가난을 선택하는 일과 같지 않은가! 가난함을 선택하고, 가난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하다. 왜 하필 창작을 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할 때가 잦은데, 가난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이 또한 누릴 수 있는 - 내지는 누려야 마땅한 - 상태가 되니 말이다.

이다음 페이지에서 로스코는 오늘날의 예술가에게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설명한다.
선택이란 양심에 대한 책임을 의미한다.
예술가의 양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술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전 포스팅에서 살펴본 루시안 프로이드, 에드바르 뭉크 역시 진실을 중요시했는데, 로스코 역시 그렇다. 다 같이 짠 듯이 한 목소리로 강조하는 이 불변의 가치가, 당대와 후대에도 계속해서 지켜지는 예술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4. 마크 로스코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의무
책에서, 로스코는 작품을 통해 '인간이 감각을 통해 영원한 진리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예술가의 의무라고 말한다. 그는 감각을 '인간이 겪는 모든 경험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언어'로 정의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일이 없어서 이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다. 생각해 보면 객관과 주관이 있으려면, 언어로 표현을 해야 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감각, 즉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은 언어를 통하지 않고 바로 느껴 몸으로 체험을 시키니 감각이 언어 이전의 언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 그게 뭐?'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정확히 언어로 꺼내어 간결히 정리를 해놓은 적이 없고, 정리가 되어있는 것을 보고서야 그렇네, 했다면 그것은 미처 짚어내지 못하고 넘어갔거나 짚어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넘겨버린 부분을 새로이 인지하게 된 것이다. 당연하게 알고 있었던 바라고 말할 수 없다.

5. 예술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로스코는 예술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식물과 마찬가지로 '환경의 요구 조건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든, 예술가로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녹록지 않은데, 라고 생각하고 있는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처절하고 잔인한 말일 수 있지만 이것이 사실임은 받아들여야 하는 듯하다. 그러지 않으면 자꾸, 왜 힘든지에 대해 생각하며 예술로부터 빠져나갈 구멍을 찾게 될 테니 말이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자기 정체성, 자기 의도와 고유의 역할을 해낸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술은 자신을 둘러싼 독창적인 요소에 관한 것이며,
예술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압도해버리는 이야기다.

알려지고 성공하기까지는 매우 힘들겠지만, 결국 압도해 버리면 비난하는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일이 생길지도.
살아남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피하거나, 자신이 아닌 듯 위장하기도 하다가 결국엔 자신의 참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예술가라는 로스코의 말은, 거장들이 거장으로 거듭나기까지 거쳐온 습작의 과정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런 게 예술가라면, 지략과 영악함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것 같다. 생활에 그림에 머리 굴리기까지, 할 것이 많다!
6. 선원근법을 이기는 인간의 감각
한때 서양 화가들은 선원근법을 사용했다. 그렇지만 지금 시대에 선원근법을 따른 옛날 작품들을 보면 굉장히 구식으로 보인다.
선원근법은 물리적인 법칙이며 과학에 속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정확하게 사진처럼 표현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원하고 추구하는 것이 지금 시대의 예술이 된 것이다. 로스코는 선원근법이 예술에서 잘 활용되지 않고 있다는 부분을 지적하며, '이런 실패의 결과는 선원근법이라는 물리 법칙이 인간의 풍부한 감각보다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앞서 과학보다 내면에서 솟아나는 영감이 중요함을 이야기했던 것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로, 일관성 있는 주장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문장이 매끄럽지는 않지만 읽어볼 만한 책
<예술가의 창조적 진실>은 문장이 매끄럽지는 않지만 읽어볼 만한 책이다. 책을 출판할 의도를 가지고 쓴 글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과, 생전에도 일절 미술에 대한 책을 쓴 적이 없었던 작가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면 좋겠다. 읽다 보면 로스코가 감정적이기도 하지만 논리적이고 깊은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책을 통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기뻤다.
<예술가의 창조적 진실> 도서: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4145723
예술가의 창조적 진실 | 마크 로스코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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