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

역시 제자보다 스승! 클림트와 에곤 쉴레: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국립중앙박물관

티카르트 2024. 12. 1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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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은 비엔나 분리파 (빈 분리파)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25년 3월 3일까지 열린다. 전시 오픈한 지 한 달이 채 안 되어서인지, 오전 10시 입장 표로 예매를 했는데도 사람들이 아주 아주 많았다. 한가한 시간으로 예매하지 않았다면 필히 시간 여유를 두고 일찍 가는 것이 좋겠다. 늦게 가면 줄이 긴데, 추운 날씨에 박물관 입구 바깥에서 대기를 하는 것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짐을 사물함에 넣어두고 들어가야 할 경우, 앞에 입장한 인원이 많다면 빈 사물함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시 입구에 걸린 전시 포스터. 클림트의 그림이 대표로 걸려 있다.

 

여러 비엔나 분리파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 

 
전시에서 좋았던 점은, 클림트와 에곤 쉴레 외에 여러 비엔나 분리파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몰랐던 작가들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느낌이 들어 좋다. 그러나, 몰랐던 작가들의 작품들 중에서 좋은 그림을 만나게 될 때에는 예상치 못한 기쁨이 선물처럼 주어진다.
 
 
 

<깊은 숲>, 안톤 파이슈타우어. 1914, 캔버스에 유화.

 
위 작품은 그리려 애쓰지 않았는데 많은 것이 표현된 것이 보여 좋았다. 
 

<옥수수 짚이 있는 풍경>, 레오폴트 블라우엔슈타이너. 1902/03년, 캔버스에 유화.

 
위 작품은 다른 작가들에 비해 실험적이고 과감한 느낌이 많이 들어 재미있었던 작품이다.
두꺼운 마띠에르에서 반 고흐를 떠올리기도 했다. 
 
아래 그림은 놀랍게도 에곤 쉴레의 그림이다. 에곤 쉴레, 하면 떠오르는 화풍 이전에 그렸던 그림인 듯 하다. 
 

 
 
아래 드로잉 역시 에곤 쉴레. 
독특해서 강렬한 느낌을 주지만, 금방 질려서 오래 보기는 힘든 스타일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에곤 쉴레의 그림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빈 분리파라고도 불리는 비엔나 분리파 작가들 중 클로만 모저라는 작가는 다방면으로 왕성한 활동을 했던 듯하다.
아래 그림은 그의 회화 작품 중 하나. 
제한된 색을 쓴 회화에서 일러스트레이션 느낌이 나는 것이 재미있었다.
 

 
아래 작품은 모저의 풍경화이다.
분홍색 때문인지, 얼마 전 보았던 리사 샌디츠의 그림을 상기시키는 느낌이 조금 있었다. 

 
 
아래 그림은 위쪽에 올렸던 그림과 같은 제목을 가졌지만 다른 작가의 그림이다.
숲의 고요하고 차가운 느낌이 느껴져 좋았다. 
 

<깊은 숲>, 알빈 에거-리엔츠. 캔버스에 유화

 
아래 그림도 위 그림을 그린 에거-리엔츠의 작품이었던 것 같다. 어느 한 군데 많이 튀는 데 없이 비슷한 톤으로 그려진 그림이라, 보기에도 눈이 편안하고 소장해서 집에 걸어두기에도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아래 유리잔은 클로만 모저의 작품이다.
모저는 회화보다는 디자인 쪽으로 더 재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아래 작품 때문이었다. 
전시를 위해 예쁘게 배치한 것도 한몫했겠지만,
찻잔과 주전자의 디자인도 모양도 독특하고 예쁘다. 
 

 
 
아래 카드는 어떤 용도인지 잊었지만, 장식을 위해 카드에 들어간 디자인이 예뻤다. 
유럽의 심플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색채와 모양이랄까?
 

 
 
아래 사진에 찍힌 문구에서 요제프 호프만이 한 말은 종합 예술을 지향하는 비엔나 분리파의 주장이기도 했다. 
 

 
아래 의자는 도형을 무척 사랑했다는 요제프 호프만의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알게 된 작가들 중에서는 리하르트 게르스틀이라는 작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에곤 쉴레, 오스카 코코슈카보다 훨씬 먼저 표현주의를 개척한 선구자였다고 한다.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배운 것은 맞지만 전통적인 화법을 거의 구사하지 않았다는 점이 대단하다. 
아래 그림은 게르스틀의 자유로운 붓놀림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래 그림에선 여인의 얼굴만 조금 전통적인 기법으로 그린 듯이 보인다. 뒤쪽 배경은 어쩐지 창문과 벽을 배경으로 한 호크니의 그림을 생각나게도 한다. 호크니의 그림이 더 후에 그려졌으니, 호크니가 게르스틀의 그림을 보고 영향을 받은 것일지도. 
 

 
바닥을 자세히 보면 검은색 선 부분은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 기호 같은 느낌도 있다.
 

 
오른쪽 위쪽 가장자리에는 더욱더 자유로운 낙서 같은 느낌의 선들이 보인다. 
 

 
 
아래 그림은 배경에서 일관된 느낌은 없지만, 모든 것이 다 달라 보이는데 조화로운 느낌이 들고 가운데 그려진 인물도 잘 보여서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아래 그림은 구스타프 클림트를 스승으로 만난 뒤 에곤 쉴레가 그리기 시작한 그림이라고 한다. 
장식 예술과 일본 목판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클로즈업해 보면 아래 붉고 어두운 부분이 일본 목판화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싶다. 
 

 
 

창조자이자 창조물이었던, 에곤 쉴레의 작품 세계

 
에곤 쉴레는 예술 속에서 자신을 만나고, 이를 그림으로 표현했던 작가였다. 
 

 

막대기 같은 프레임감이 느껴지는 에곤 쉴레의 드로잉. 
빼빼 마르고 특이하다 이상의 어떤 느낌은 잘 모르겠는 그의 세계다. 
 

 
 
'잘 모르겠다'는 것은, 사람의 시선과 감정을 그림에 끌어들여 동조하도록 하려는 듯한 음침한 느낌이다. 
고통을 놓지 않고 붙잡아 이를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들의 그림들 중엔 그런 느낌을 주는 그림이 꽤 있는데,
굳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런 느낌을 받도록 해야 하겠냐는 생각이 든다. 
 
그림에 공감을 하게 하느냐, 또는 시궁창에 같이 끌어내려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느냐는 한 끝 차이로 관람객에게 주는 그 영향이 크게 달라진다. 한 번의 느낌, 경험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본 관람객에게 영감을 주어 그를 살게 하느냐, 또는 우울하거나 절망하게 하여 그를 죽고 싶게 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자기표현으로 끝나는 그림은 거기에서 한계선이 분명해지는 것 같다. 에곤 쉴레의 그림은 그런 그림의 대표적인 예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취향이 아니기는 하지만, 에곤 쉴레나 그의 그림에 악감정은 없다). 
 

 
 
에곤 쉴레의 드로잉은 분명 뛰어나지만, '자기표현'을 하며 나오는 모난 느낌이 긍정적인 개성의 느낌을 주지는 않는 것 같다. 
 

 
 
쉴레가 동생을 그린 것이라는 아래 드로잉은 정말 좋았다. 클림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 한눈에 보인다. 클림트를 따라 해서 좋았다는 것은 아니고, 클림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흐름이 아래 드로잉에서도 느껴져서 좋다. 
 

 
 
물론, 클림트처럼 그렸다면 평생 클림트의 아류라는 딱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래 그림을 보면 쉴레도 모난 부분 없이도 충분히 개성을 담으면서 따뜻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에곤 쉴레의 개성을 존중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쉴레가 클림트의 좋은 점을 많이 흡수하면서 부드럽게 그리는 방향으로 갔다면 훨씬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래 그림 같은 경우엔 조금씩 모난 부분이 있기는 해도, 자세히 보면 둥그스름한 곡선이 쓰였다. 일부분만 선이 빼곡하게 들어가 포인트가 된 점이 좋았다. 생략한 부분도 좋았다. 
 

그림에 구멍이 뚫린 것이 아니라 조명이 액자에 비친 것이다.

 
전시에서 본 쉴레 회화 작품 중에선 아래 그림이 가장 좋았다.
이번 전시 홍보에 쓰인 그림이기도 하다. 
 

 
 
유화 물감으로 투명해 보이도록 그린 부분이 매력적이다. 
 

 
 
한 번 보고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하는 그림의 강한 개성이 있는 것은 정말 대단한데,
오래오래 보고 싶도록 만드는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아쉽다. 
 
아래 그림은 쉴레가 아카데미 시절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나중에 그린 그림들의 스타일을 생각하면 아래 그림처럼 그리는 게 매우 못 견디게 지루했을 것은 같다.
금방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하니 말이다. 
 

 
 
아래 그림은 쉴레에게 이런 시절이 있었다니, 하고 놀라게 했던 긴 머리 시절의 자화상. 
 

 
 
아래 작품은 구도가 재미있어서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인물 뒤에 희번덕거리는 눈을 한 인물은 꿈에 나올까 봐 조금 무섭다. ㅎㅎㅎ
 

 
 
아래 그림은 쉴레가 불투명 수채로 종이에 그린 그림이다.
색이 들어간 그림 중엔 아래 그림이 제일 좋았다. 불투명한 재료를 투명한 느낌으로 얇게 잘 쓰는 것이 쉴레의 강점인 듯하다. 
인체를 참 정확하게 잘 그린다. 
 

 
 
아래 그림은 쉴레 답지 않게 안정적이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그의 아내를 그린 작품이라는데, 작품으로 돈을 벌게 된 이후 임신한 아내가 먼저 죽고 그도 3일 뒤에 죽었다고 한다. 
좋은 일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죽게 되다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내와 쉴레 모두 살아서 아기를 만나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살았다면, 쉴레는 또 어떤 작품들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을까?

 
불투명한 재료를 써서 투명하게 보이게 하는데 그게 또 깨끗한 느낌은 아닌 것이 쉴레의 특징이라 해야 할지.
자기만의 무엇을 탄생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으로 보인다.
생각보다 좋은 것은 그러나, 자기표현으로 자기만의 무엇을 만들어내려고 할 때 나오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에곤 쉴레는 스승인 클림트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클림트가 쉴레보다 더 뛰어난 이유는 일부러 아래에 몰아둔 클림트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귀하게 만나본 클림트의 몇 안 되는 작품 

 
사실 전시엔 클림트를 보러 간 거였는데, 클림트 작품은 몇 점 안 돼서 아쉬웠다. 그러나, 그래서 더 귀하게 만나보기도 했다.
클림트의 작품을 보면 자기만의 무엇을 만들어내려는 그 애씀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느껴진다. 그래서, 다른 작가들과 클림트의 차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클림트는 드로잉부터 선이 흐르고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살아있는 작가이다.
작가가 대상을 보고 그리는 동안의 생각, 감정, 숨과 같은 모든 경험이 그림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살아있음이 느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래 드로잉은 어찌 보면 에곤 쉴레의 드로잉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는데, 그 와중에 부드러운 느낌이 있다. 
 

 
아래 드로잉에선 여성의 눈빛에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느껴지는데, 그건 그렇게 생긴 모델을 써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겠으나 클림트가 그리는 동안 느낀 감정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시 첫 입구에 있었던 클림트 회화 작품 네 점을 보면, 위 드로잉들에 담겨있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걱거리고 빳빳한 옷이었을 텐데 왠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흘러내릴 것 같다.  
 

 
 
할아버지 머리는 무슨 일로 이렇게 반들거리고 보드라워 보이는 가. 
 

 
 
아래 그림은 모든 것이 부드러운데 뭉개진 곳 없이 다 잘 보인다. 
 

 
 
아래 그림은 왜 전시 포스터에 쓰였는지 알 수 있었다.
여성이 예뻐서 아름다워 보이는 걸 수 있겠지만, 클림트가 사랑이 넘치는 상태에서 그렸을 거라는 것이 느껴졌다.
꼭 여성을 이성으로 사랑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 사랑이 많아서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상태 말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얼굴을 저렇게 보드랍게 그린담...?
 

나도 저렇게 그리고 싶다

 
 
전시를 다 보고 나서 엽서도 샀는데, 엽서에는 원화의 느낌이 다 담기지 않았다.
볼수록 홀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여성과 시선이 얽혀드는 느낌이 들어 신기했다. 
 

모르는 언니야가 나를 홀림

 
 

휩쓸려 다니기 싫다면 조금 기다렸다 보러 가도 좋을 전시 

 
조용히 그림을 감상하고 싶다면, 조금 기다렸다 연초나 설 이후에 보러 가도 좋을 전시. 문화의 날이 아닌 수요일 오전인데도 사람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다. 잘 몰랐던 작가들의 다양한 그림을 접할 수 있어 좋았고, 에곤 쉴레 원화는 그 수가 많은 것에 비해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클림트 그림을 보러 오스트리아에 여행 가고 싶어지는 전시였다.  
 
<끝>
 
 
 

리사 샌디츠 그림 관련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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