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

청명한 새해의 기운을 품은 전시, 이강소의 풍래수면시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티카르트 2025. 1. 2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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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는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이다. 1970년대부터 사진, 회화, 판화, 조각, 설치, 행위 예술 등 폭넓게 실험적인 예술 작업을 해왔다. 이를 통해 '그림이란 이런 것, 예술이란 이런 것'이라고 사람들이 가진 관념을 깨고 신선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한국 현대미술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왔다. 1975년 제9회 파리 비엔날레에서 분필 가루가 뿌려진 가운데 놓인 나무 모이통에 닭을 묶어둔 채 닭이 남기는 흔적을 관찰하는 작품을 선보이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 작품에서 작가는 사람이 의도한 대로 그리는 그림이 아닌, 사람이 아닌 존재의 운동성이 만들어낸 흔적을 보여주며 인간 존재에 의문을 던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정확히 같은 작품은 아니지만, 박제된 닭을 이용해 만들어진 흔적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강소의 전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선보인 이강소의 설치미술 작품. 박제된 닭을 이용해 흔적을 남긴 작품이라고 한다.

 

 

 

청명한 새해의 기운을 품은 전시, 이강소의 <풍래수면시>

 

실험적인 정신이 돋보이는 이강소의 작품들이 모인 <풍래수면시> 전시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이런저런 시도를 다양하게 해 봐야겠다는 의욕과 용기를 얻게 된 전시였다. 그의 작품 이름처럼, '청명'한 새해의 기운을 품은 전시라고 할 수 있겠다. 

 

전시 초입에 놓인 작품부터 벌써 인상적이었다.

청년 시절에 그가 몸에 물감을 바른 뒤 천을 몸에 둘러 남은 흔적을 전시한 작품이다. 

 

 

 

전위적인 예술을 펼쳤던 백남준이 떠오르기도 하는 작품이었다. 

 

 

이강소는 설치 미술 작업도 하지만, 회화 작업을 주로 하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회화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아래 작품 역시 설치 미술처럼 자유로우면서도 실험적인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오리가 등장하는 작품들도 꽤 있었다. 

묘사를 한 것이 아닌데, 오리로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사진을 보거나, 물 위에 떠 있는 오리를 정말로 보고 그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오리가 다르게 생긴 것을 볼 수 있다. 

오리 주변으로 보이는 물의 흐름도 선명하게 잘 보인다. 

꼭 흐리다고 선명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흐리게 남겨야 더 선명해 보이는 흔적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아래 그림은 네 점의 실험적인 그림 중 하나. 가장 마음에 들어서 찍었다. 

 

 

 

점을 한쪽에 몰아서 찍고 뿌린 것이 재미있었다. 

 

 

 

아래 그림에는 더 많은 오리들이 등장한다. 

 

 

 

물감을 칠하고 뾰족한 도구로 물감을 긁어내며 만들어낸 오리의 흔적도 보인다. 

 

 

 

찰흙을 던져서 만들어진 모양대로 굳은 작품 시리즈도 있었다. 

 

우연적으로 만들어지는 특성을 이용했지만,

그중에서도 모양이 흥미롭고 예쁜 것들을 골라서 전시하지 않았을까. 

 

 

 

 

조명이 액자에 비쳐서 사진 찍을 때 아쉬웠지만, 좋은 작품이었다. 

 

 

 

아래 사슴 작품도 다분히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검은색 물감이 흘러내린 자국, 흰색 물감, 검은색과 흰색 물감이 만나 만들어진 회색 부분들, 

흰색 위에 힘찬 검은색 라인 등이 무질서한 듯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이 작품에선 난데없이 두껍게 물감이 뭉쳐있는 부분은 없었던 것 같다. 

 

 

 

영상을 이용한 실험적인 시도  

 

아래 영상 작품도 재미있었다. 

기차가 지나가는 곳에 카메라를 놔두고 그 앞에 오가는 사람들, 그들의 기척과 기차 소리 등을 오래 촬영한 듯하다. 

주름진 커튼을 놓고, 그 커튼에 영상을 비추니 분위기도 있고 흥미로웠다.

 

영상이 꼭 평평한 화면에만 놓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굴곡진 천 위에 놓여있을 때 아름다운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선한 작품이었다. 

 

 

 

 

실험 정신이 특히 돋보이는 스크린프린트 작업 

 

전시에서 본 이강소의 모든 작품들이 실험적이었지만,

그의 실험 정신은 아래 스크린프린트 작업 시리즈에서 특히 돋보인다. 

1970년대 작품으로, 올드해서 보기 싫다거나 한 느낌이 없어서 좋았다. 

 

 

 

스크린프린트 위에 아크릴 물감의 흔적을 일부 남겼다.

 

보통 이런 이미지가 있으면, 상 위에 무엇이 놓여있는지를 먼저 보게 마련이다.

눈여겨보지 않고 지나치게 되는 상다리에만 물감이 묻도록 한 것은 의도된 시도라 볼 수 있다. 

 

 

 

아래 작품에서는 한 술 더 뜬 실험적 시도를 볼 수 있다.

스크린프린트 작업 한편에 라인 드로잉을 놓고, 작품 전체 위에 투명한 판을 덧대 그 위에 물감의 흔적을 남겼다. 

 

 

 

아래 작품에서도, 푸른색과 상반된 색인 노란색을 엷게 칠해 푸른 부분과 어우러지면서도 눈에 잘 띄게 한 것,

그리고 진한 푸른색 테이블 다리에 붉은색을 진하게 칠한 것을 볼 수 있다. 

 

 

가만 보면 바닥에 있는 양동이에는 흰색을 덧칠하고, 물감의 흐른 자국을 통해 물이 양동이에서 흘러내린 듯한 효과를 티 나게 주었다.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는 이미지이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보게 만드는 효과적인 작업 방식으로 보였다. 

 

 

 

아래 작품들에도, 푸른색 스크린프린트 위에 여러 시도를 한 흔적이 남아있다. 

아래 네 점의 작품들 중에서는 왼쪽 상단에 있는 이미지가 눈에 띄었다. 

 

 

 

사진 위에 물감, 물감 위에 낙서.

 

이목구비가 얼핏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표지판 아래에 앉아있는 사람의 경우 흐릿하게 찍힌 데다 물감을 덧칠해서 어떻게 생겼는지 더욱 보이지 않는다. 

 

인간 존재의 무상함을 주제로 작업한 다른 작품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람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이미지를 선택하고, 사람을 돋보이지 않게 한 것 역시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는 작품이다. 

 

 

 

의자 위에 놓인 물감 작품도 좋았다. 

 

 

 

스프레이를 이용한 작품도 있었다.

 

요즘 스프레이의 번짐을 이용한 작품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 

스프레이를 이용해 만든 작품을 전시에 내놓은 것일 수 있다는 미술 선생님의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진 위에 회화 작업 

 

아래 작품은 사진과 붓 터치를 어우러지게 하면서도 서로가 다른 요소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금박 부분은 오리인 걸까?

 

 

 

위 작품은 전시에서 아래 작품보다 위에 걸려있었는데도 더 눈에 띄었다. 

 

 

 

사진과 붓터치가 가장 잘 어우러졌던 작품은 아래 작품이었다. 

 

 

 

흰 배경에 붓터치만 있어도 좋은 작품이었을 것이다. 

사진 위에 해서 더욱 독특한 작품이 되었다. 

 

 

 

아래 작품도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꾀한 것으로 보았다. 

인물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가 있었을 것이고, 서예를 하는 서예가, 동양화 느낌의 회화를 추구하는 작가는 있었겠지만 

사진과 회화를 섞는 경우는 그 당시에는 잘 없었을 테니까. 

 

 

 

풍래수면시 전시 중 가장 크기가 큰 작품, 청명

 

풍래수면시 전시 중 가장 크기가 큰 작품은 <청명>이었다. 

호방하고 시원시원하여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다. 

 

 

 

이강소 작품 실물은 처음 보았는데, 

왜 거장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거침없지만, 그 안에 부드러움과 섬세함이 섞여 있는 것이 매력적이다.

 

 

 

 

 

이강소의 풍래수면시는 2025년 4월 13일까지 

 

4월까지 하고 입장료도 싼 편이니, 날이 좋을 때 보러 가면 좋을 것 같다.

무료 개인 물품 보관함이 있어서 편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전시를 본 후에는 술집 컨셉의 테이블에 앉아 전시 관람 후 소감을 기록하거나,

함께 간 지인과 함께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봐도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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