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

천 년 후 서울에서 발굴되는 유물 미리 보기: 다니엘 아샴의 서울 3024 전시

티카르트 2024. 9. 4.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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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후 서울에서 발굴되는 유물을 미리 보는 미술 전시 

 

다니엘 아샴의 서울 3024는 천년 후 서울에서 발굴되는 유물을 미리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미술 전시이다. 아샴은 '상상의 고고학 (Fictional Archaeology)'라는 개념을 창조한 작가로, 이 개념이 무엇인지 관객에게 전시를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울 3024에서는 아샴의 고전 조각상의 재해석한 조각 작품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과 함께, 천 년 후 서울을 주제로 제작한 대형 회화 두 점을 만날 수 있었다. 

 

 

전시 초입에 아래와 같이 다니엘 아샴의 우주관을 도식화한 안내 지도(?)도 있었는데, 상당히 복잡했다. 

 

 

 

상상의 고고학이라는 개념에 맞게, 아래 그림에서는 조각상을 둘러싼 '현대 유물'들을 볼 수 있었다. 야구 모자, 티셔츠, 다스베이더 피규어, 운동화, 코카 콜라 등 지금 인기를 끄는 여러 가지 현대 문물들이 천 년이 지나 발굴이 되면 유물이 되어 있을 거라는 이야기. 

 

 

 

유물을 그린 것이라는 가정 하에 색채는 절제해서 쓴 것이 적절했다. 페인팅 실력보다는 아이디어, 기획력이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했다.

아래 사진에서 재현한 조각상의 일부만 봐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되어 파손된 부분에서 드러나는 숨겨진 광물이라니. 

 

 

 

깔끔하고 예쁘게 만들어진 작품이었지만, 공장에서 찍어낸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작가가 오랜 시간을 들여 수작업을 했다는 표가 역력히 드러나는 작품이었다면 작품으로서의 가치도 더 높았을 것이다. 작품 감상도 더 오래 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전깃줄, 철사 등이 파손된 부분에 박혀있는 작품들을 만들었었다고 한다. 초기 작품들은 더욱 흥미로웠을 것 같다). 

 

 

 

포켓몬 카드 작품은 좀 신박하다고 생각했다. 포켓몬 카드를 벽을 다 덮을 정도의 크기로 크게 만들어 보석을 박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행해 만들어낸 스케일이 대단했다. 

 

 

 

피규어 모양으로 만든 포켓몬 캐릭터들도 재미는 있었지만, 더 신선하게 느껴진 것은 카드 쪽이었다. 

 

 

 

그렇더라도 피카츄는 만인에게 두루 사랑받고 관심 끌기 좋은 소재.

 

 

 

포켓몬을 소재로 애니메이션도 만들었다. 20여분의 짧은 영상이었는데, 다니엘 아샴 캐릭터(아래 아샴의 드로잉에서의 왼쪽)가 영상에도 등장한다. 

 

 

 

애니메이션 외에도 제작한 영화가 전시 내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영화에도 본인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기애가 있어 작품에 등장하는 가능성 외에, 본인이 출연하는 것의 의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것은 영상과 영화를 제대로 보지 않은 상태에서 가지게 된 의문이기도 하다. 영화는 1시간 정도로 상당히 길어, 전시를 보는 동안 영화까지 다 보지는 못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지, 일본 캐릭터와 조각상을 믹스매치한 페인팅 작품도 있었다.

서울 3024 전시 취지에 맞게, 한국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을 등장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서울에서 서울 3024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하면서, 막상 전시된 작품들에는 일본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 전시의 기획 의도를 흐리는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피카츄는 좋지만, 그건 도쿄 3024 전시에서 했으면 더 빛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이미 도쿄에서 전시를 하고 난 뒤에 서울로 왔겠지만).

 

 

유물 발굴 현장처럼 꾸며놓은 곳이 있었다. 

기타가 놓여있는 것이 재미있다. 

 

아래 사진은 북한산에서 발굴된 유물을 주제로 한, 서울 3024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페인팅 작품. 

 

3024년 북한산에서 발견된 헬멧을 쓴 아테나 여신, 2024. Acrylic on canvas panel

 

작가가 색을 한정적으로 쓰는 것은 절제한 이유도 있겠지만 색맹이라 그런 것도 있다고 한다. 

색맹이라도 미술 분야에서 창작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성공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는 것에 감동했다.

같은 신체적 제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전공자인 창작자 입장에서는 희망적인 소식이라 더 그랬다. 

 

 

게임 컨트롤러를 쥐고 있는 손 같은 것도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꼭 영화에서만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문구가 와닿는 것은, 작가가 이를 본인의 전시를 통해 실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코닥 필름 카메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좋아할 작품도 있었다. 

 

 

 

아래 작품들은 다니엘 아샴의 초기 작품들이라고 들었다. 전시에서 볼 수 있었던 최근 작품보다는 이쪽이 더 흥미롭고 신선했다. 

 

 

 

9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카메라와, 미국인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블록버스터 비디오. 

 

 

 

브랜드가 안 쓰여 있어도 어디서 만들었는지 짐작이 가는 농구공. 

 

 

전화기와 카메라, 헤드폰 등 여러 아이템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비슷한 외관을 가진 것 같아도 다 다르게 생겼다. 

 

 

아래 드로잉도 초기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른 작품들보다도 이 드로잉이 오히려 굉장히 좋게 느껴졌다. 

 

 

다니엘 아샴의 스튜디오를 재현한 공간. 자본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쁜 뜻은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뜻이다). 

 

 

 

여러 브랜드와 협업을 한 흔적이 많이 보였다. 티파니와의 콜라보 작품이 예뻤다. 

 

 

 

아래 사진은 디올과의 콜라보 작품. 

아샴은 캔버스 위 또는 프레임 안에 무엇을 넣는 것보다는, 완전 입체로 조각상이나 설치 미술을 하는 게 더 완성도가 좋게 나오는 작가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제일 재미있었던 작품은 아래 럭비공 타워. 

 

 

 

럭비공이 푸른색인 것도 재미있는데, 발견된 유물들처럼 광물이 박혀 있다. 

 

 

 

자세히 보면 반짝거리는 부분들이 있어 재미있다.

클로즈업해서 사진을 찍으려다 주의를 받았다.

지나치게 가까이 가서 작품을 보는 편이 아닌데, 신기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들여다보게 되었나 보다. 

 

 

 

관객들이 참여해서 만드는 발굴 일지 코너도 있었다. 

 

 

 

그림을 정성 들여 그린 관객들의 작품이 보여 찍어보았다. 

 

 

 

전시 마지막에는 영상으로 보는 발굴 현장도 있다. 전시 공간의 세 면 전체를 활용해서 영상을 띄우고, 발굴 현장의 아침, 낮, 밤을 보여준다.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던, 그러나 조금은 아쉬웠던 전시 

 

미래의 발굴 현장을 엿볼 수 있는 미래 유물 전시라니, 얼마나 참신한지.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던 전시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뉴스에서 보곤 하는 과거의 유물처럼 정말로 무너져 내리는 대상의 질감을 리얼하게 표현했다면 더욱더 대단했을 것 같다. 좋은 아이디어가 더욱 돋보이도록 시간과 정성을 많이 들였다면 더 오래 머무르면서 보고 싶은 전시였을 것 같다. 하지만, 자칫하면 억지로 우기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이만큼 시각화해서 보여줄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쉬움이 있더라도 그것은 결과를 본 사람이 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일부일 뿐. 아샴은 희소성 있는 개념을 정립해 그것을 미술 작품으로 보여주고,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여 생계를 잇고도 남는 수익을 올린 대단한 작가이다. 그의 전시를 계기로 다시 한번 종이 위 드로잉, 또는 페인팅을 어디까지 확장해 볼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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