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

뮤지엄산에서 만난 백남준과 제임스 터렐, 그리고 조형 작품들

티카르트 2023. 11. 1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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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산은 강원도 원주의 산 속에 위치한 미술관이다. 한솔문화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플라워 가든, 워터 가든, 본관, 명상관, 스톤 가든, 제임스 터렐관으로 구성되어 자연과 인간의 미술 작품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뮤지엄산 워터 가든의 일부.

 

플라워 가든은 알고 보니 희귀 식물들을 보존하는 곳. 의미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피어있는 꽃들이 있다.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생명력이 대단하다.

 

본관은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나뉘어져 있다. 미술관 청조 갤러리에서는 뮤지엄산을 지은 안도 타다오의 건축 전시 '청춘'이 열리고 있는 중이다. 박물관의 경우, 종이를 다루는 회사답게 종이 관련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뮤지엄산에서 만나는 대형 작품들

 

안도 타다오의 전시를 위해 오랜만에 뮤지엄산을 방문하면서, 여러 다양한 작가들의 대형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 공간과 빛의 마술사 제임스 터렐, 그리고 그 외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다. 

 

 

 

에릭 오어의 <폭포 (Cascade)>. 본관에 가기 전에 위치한 작품이다. 

 

알렉산더 리버만의 <아치 웨이>.

 

뮤지엄산의 본관으로 걸어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아치 웨이는 알렉산더 리버만의 작품이다. 철로 제작된 대형 조형물로, 강렬한 레드가 인상적이다. 워터 가든 위로 놓여있는 거대한 다리는 뮤지엄을 다 보고 집에 돌아오면서도 생각날 정도로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뮤지엄산에 처음 가보는 사람 중에서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과 잘 안 어울린다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렇지만 뮤지엄산의 이름을 들으면 '아, 그 빨간 다리 같은 거 있는 거기!' 하고 바로 생각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백남준의 로봇 연작 <정약용>과 <퀴리부인>

 

안도 타다오의 전시를 보던 중에 백남준의 로봇 연작도 만났다. 커다란 공간 안에 <정약용>과 <퀴리부인>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TV와 다른 기계들을 이용해 로봇으로 확실한 형태가 갖춰져 있는 작품이다. 정약용은 자전거를 타고 있고, 퀴리부인은 빨강, 파랑 차를 신발로 신고 있다. 

 

백남준의 로봇 연작. 왼쪽이 <정약용>, 오른쪽이 <퀴리부인>이다.

 

 

워낙에 큰 작품이라 그런지, 두 개의 작품만 있는데도 굉장히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의 뒷면도 볼 수 있었는데, 여러 전선과 전원이 이어져 복잡해보였다. 이런 걸 어떻게 만들 수 있었는지 신기하고 놀라웠다. 

 

 

<정약용> 작품 뒷면.

 

 

<퀴리부인> 작품 뒷면.

 

학교 다닐 때 미술 교과서에서 보았던, 그리고 미술관에서 때때로 마주쳤던 백남준의 작품은 내게 그렇게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미술 공부를 하면서 다시 보니, 백남준이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1960년대 당시에 얼마나 파격적인 작품이었을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그의 발상과 작품을 다시 눈여겨보게 되었다. 

 

로봇 뒷면에서 백남준의 사인도 보았다. 1993년도 작이었다.

 

 

안도 타다오의 스톤 가든에 위치한 다양한 조형 작품들

 

안도 타다오의 스톤 가든을 지나면서도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뮤지엄산 본관에서 나오면 보이는 안도 타다오의 스톤 가든.

 

안도 타다오의 스톤 가든에 위치한 거대한 돌무덤들은 안도가 한국의 고분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서 만든 작품들이다.

 

안도 타다오가 한국의 고분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고분 시리즈. 한국의 지역 이름으로 제목이 붙여져 있다.

 

고분 주변으로 다른 조형 작품들도 볼 수 있다.

 

베르나르 브네의 <부정형의 선 (Undetermined Line)>도 만나볼 수 있는데, 드로잉 선을 철로 부드럽게 만든 조각 작품이다. 별 생각 없이 보면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게 된다. 그렇지만 사람이나 동물의 조각상이 주로 많았던 중세 시대를 생각해보면, 브네의 작품 역시 백남준의 로봇 못지 않게 파격적인 작품이다. 

 

베르나르 브네의 <부정형의 선 (Undetermined Line)>.

 

선이 선으로 있지 않고 조각이 될 수 있다고? 그것도 철로? 

왜? 어떻게?

르네상스의 화려함을 누렸던 중세 시대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을 발상이다. 

 

이 외에도, 고분들 사이로 다양한 조형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흰 공간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빛의 세계, 제임스 터렐관

 

스톤 가든을 지나면 제임스 터렐관이 있다. 관람하려면 미리 관람권을 구매해야 한다. 몇 년 전 감상을 했던 작품인데도, 다시 가서 보니 또 느낌이 달랐다. 정해진 시간대에 30분동안 관람할 수 있는데, 시간이 정말 훌쩍 지나간다.

 

아쉽게도 제임스 터렐의 요청에 따라 관내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 덕분에 네 개의 작품들을 집중해서 체험할 수 있었다. 

 

비행기가 추락하던 순간의 경험이 담긴 <간츠펠트 (Ganzfeld)>

 

비행 조종사로 전쟁을 겪었던 제임스 터렐이 비행기가 추락하던 당시를 떠올리며 만든 작품이라고 들었다.

처음에 앉아서 감상을 할 때는 벽에 단색의 슬라이드 쇼를 프로젝터로 띄운 것처럼 평면으로 보인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 평면처럼 보이는 것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공간이다. 안에 들어가볼 수 있다.

공간 안을 비추는 빛의 색깔이 계속해서 바뀐다. 생각보다 안쪽으로 깊게 들어가는 공간 뒤쪽에는, 벽이 없이 뚫려있는 낭떠러지가 있다. 

그리고 공간 안에서 바깥을 볼 때 보이는 빛의 색깔도 계속해서 바뀐다.

빛은 안개가 낀 듯이 부드러워서, 계속해서 보아도 눈이 아프거나 하지 않다. 

어떻게 빛을 이용해서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공간에 펼칠 수 있는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밤에 보았던 빛이 담긴 <웨지워크 (Wedgework)>

 

웨지워크는, 터렐이 어린 시절 인상에 깊게 남았던 빛을 재연한 작품이다. 잠을 자다가 밤에 깼는데, 멀리서 보이는 빛을 보고 따뜻함을 느끼며 다시 잠들었다고 한다. 

 

보통 그런 기억은 추억으로만 남기고 그것을 다시 형상화할 생각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 역시 독특한 발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터렐이 오래 전의 기억을 되살려 만들어낸 어둠 속 빛을 보면서 눈도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이,

그의 어린 시절의 경험과 지금의 내가 만나면서 새로운 경험이 만들어지는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나만의 하늘을 만끽할 수 있는 <스카이 스페이스 (Sky Space)>

 

몇 년 전 이 곳에 왔을 때는, 이 공간에서 명상을 했었다. 2018년 이전으로, 그 때는 아직 명상관이 오픈하기 전이었다.

그 때 하늘을 올려다보던 기억이 좋게 내 안에 남아있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스카이 스페이스를 경험했다.

 

작품 대신 벽에 걸린 이미지를 촬영했다.

 

둥그런 공간에 의자가 있고, 뚫려 있는 둥그런 모양의 천장으로 하늘이 바로 보이는 작품이다.

이번에는 명상을 하지는 않았지만, 가만히 앉아서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고, 존재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때는 명상을 한지 몇 년 안 되었던 시기였다. 지금은 명상을 한지도 10년이 넘어간다. 명상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순간순간을 살아내는 나의 경험이 그 때와는 달라진 부분이 있다. 

 

앉아서 보는 푸른 하늘도 아름답지만, 룸 안을 걸어다니면서 하늘이 나를 따라오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멀찍이서 떨어져서 룸의 바닥 중앙을 보면 아주 동그란 보름달 같은 하늘도 만날 수 있다.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천장을 막아둔다고 하는데, 갔던 날에는 날씨가 좋았다. 감사하고 기쁘게 나만의 파란 하늘을 마음껏 만났다. 

 

<호라이즌 룸 (Horizon Room)>

 

호라이즌 룸은 제임스 터렐관의 네 작품 중 마지막에 감상하게 되는 작품이다. 앉아서 계단 위쪽으로 네모나게 뚫린 창을 통해 하늘을 감상한다. 그 뒤에는 계단을 걸어서 창을 통해 밖으로 나갈 수가 있다. 계단을 올라가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아래에서 보면, 사람들이 창밖으로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이드를 해주신 직원 분의 말처럼, "천국의 계단을 통해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호라이즌 룸의 이미지.

 

공교롭게도 호라이즌 룸 바깥에선 골프장이 정면으로 보인다. 골프장 광고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우연히 그렇게 된 거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런 질문을 한 사람들이 과거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더했던 것일까?

그냥 골프장을 바라볼 땐 별 생각이 들지 않았었는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오히려 광고하고 있으면서 아닌 척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그런 생각을 하라고 해준 이야기가 아닐텐데. 마음이란 참 재미있다. 

 

 

하루를 비워서 여유롭게 감상하면 더 좋은 뮤지엄산

 

보고 싶은 전시 하나만을 위해서 가는 것도 좋지만, 하루를 통으로 비워서 가면 더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곳.

뮤지엄산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가서 추억을 남기기에 좋은 곳이다. 

 

인간의 예술 작품과 건축물, 그리고 그를 둘러싼 자연의 조화를 마음껏 만끽하고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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