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

레고로 개념 미술, 아이 웨이웨이 개인전 전시 후기

티카르트 2023. 7. 3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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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컨템포러리 아트에서 열린 아이 웨이웨이 개인전 

 
지난 4월, 청담동 탕 컨템포러리 아트에서 열린 아이 웨이웨이 개인전에 다녀왔다. 전시 끝나기 직전에 전시 정보를 알게 되어 운 좋게 다녀올 수 있었다. 갤러리에서 하는 무료 전시로, 주말에 갔는데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층고가 높은 공간에 스케일 큰 작품들이 널찍널찍하게 배치되어 있으니 한 작품씩 느긋하게 볼 수 있어 좋았다. 작게 만들어졌으면 그냥 레고 아트거니 했겠는데, 크기가 많이 크니까 시원시원한 박력이 느껴져서 멋지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전시는 3월 10일부터 4월 22일까지였다. 
 

전시 나오는 길에 찍은 사진이지만 너그럽게 전시 입구라고 해두자.

 

레고로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개념 미술 아티스트, 아이 웨이웨이 

 
아이 웨이웨이는 보기에 예쁘고 아름다운 미술 작품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는 아티스트는 아니다. 사회 문제, 인권 등 사회적 이슈를 작품에 등장시켜 사람들이 이슈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드는 작가이다. 작품을 통해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작품을 통해 전달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 때문에 정부와 갈등을 겪고, 위협을 받기도 했다. 목숨을 건 예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 주목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있겠지만, 본인의 생사 여부를 알리기 위해서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 웨이웨이는 레고 블록을 사용한 대형 설치 예술 작품들로도 잘 알려져 있다. 탕 컨템포러리 아트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도 인물, 동물, 추상화 등 다양한 주제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잠깐! 개념 미술이란?

개념 미술(Conceptual Art)은 미술의 한 장르로, 작품의 개념이나 아이디어가 작품의 중심에 놓이는 예술적 접근 방식이다. 작품의 시각적인 완성물 자체보다는 작품을 둘러싼 개념, 의미, 메시지 등을 강조한다.

개념 미술은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예술 운동으로, 기존의 전통적인 미술 형식과 경험을 뛰어넘어 새로운 현대 미술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개념 미술 운동을 통해 작가들은 예술 작품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개념 미술은 아트 피스 자체가 아닌, 작가의 의도나 컨셉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작가의 스케치, 기획서, 사진, 텍스트 등만 있어도 이는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가 될 수 있다. 작품이 갖고 있는 개념적인 의미를 보다 중요시하며, 작가와 관람객 사이에 적극적인 상호작용과 사고를 유도한다. 

 
 

대형 미술 작품에서 느껴지는 박력과 감동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작품의 크기가 클 때 느껴지는 박력과 감동이 있다. 이런 게 중국 스케일인가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 작품들이었다. 
 

진짜 엄청나게 크다.

경찰에 연행될 때 당시 아이 웨이웨이 본인이 촬영한 이미지를 레고로 만든 작품. 벽 한 면을 다 덮는 사이즈의 작품이다.
멀리서 보면 디지털 사진인가 싶지만, 가까이서 보면 조그만 레고 블록의 나열이다. 픽셀 아트란 이런 것인가?!

레고로 한땀 한땀이다. 지독한 사람...

 
 
잭슨 폴록의 작품을 레고로 만든 것도 있었다. 잭슨 폴록을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상당히 반가웠다. 
 

잭슨 폴록의 아이 웨이웨이화
(아마도) 잭슨 폴록.

 
작은 사이즈의 작품도 있었다. 
 

작은 규모지만 멋진 작품이다. 레고로 흑백 작품도 신선하다.

 
왠지 모르게 고흐가 생각나는 색감의 작품이다. 
 

뭔지 모르게 고흐스러운 색감 위에 시체 놀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뮐러 보고서 (Mueller Report)였다. 보고서의 표지를 레고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러시아의 개입 여부를 조사한 보고서이다. 미국 법무부에 의해 임명된 특별검사 로버트 뮐러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조사로, 그의 이름을 따서 뮐러 리포트라고 줄여 부르는 듯하다. 
 

가까이서 찍으면 이런 느낌이다. 이것만 보면, 이게 뭔가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지만, 정말 레고로 이렇게 만들어서 이게 내 작품이오 할 수 있는가?! 이런 게 자신감이고 용기고 박력이다. 힙하다 (O)

 
이 보고서의 주된 목표는 2016년 선거 기간 중 러시아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캠페인 사이에 어떤 공모가 있었는지, 트럼프 캠페인과 관련된 사람들이 법을 어긴 부분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보고서는 트럼프 캠페인과 러시아 사이의 공모 여부를 입증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이로 인해 트럼프 측에 대한 의혹이 완전히 없어지지도 않았다. 
 

탕 컨템포러리 아트 갤러리 2층에서 본 뮐러 보고서의 전체. 엄청 크다.

 
보고서 표지를 레고로 만들 생각을 한 것도 너무 창의적인데, 크기까지 크니 보면서 압도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보고서 표지를 레고 블록으로 크게 만들었을 뿐인데, 이를 통해서 아이 웨이웨이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작품으로부터 전해받는 에너지가 상당했다. 정말, 어떻게 보면 레고 아트일 뿐인데! 
 
정치외교를 전공한 입장에서는 아주 흥미롭고 충격적이며 감동적이기까지 한 작품이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실제로 정치에 입문을 하거나 국제 기구에 들어가서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예술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작품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며 사람들에게 현 정세에 관심을 갖도록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술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정치 이론에서도 왜 문화와 예술을 소프트 파워(soft power)라고 하는지 체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토끼 뒤에 토리이가 있는 걸 보니 이것도 뭔가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었을 것 같은데, 내막은 잘 모르겠다.

핑크와 초록의 대비가 독특해서인지 눈에 확 띈다. 핑크와 파랑도 대비가 되고.

 
중국 도자기를 깨뜨리는 순간을 레고로 표현한 작품. 

전통을 깨뜨리는 의미로 도자기를 깬 걸까, 전통을 잊고 서양 사조를 따라가는 현대 미술을 풍자하는 걸까?
프레임 안에 프레임이 있는 느낌이다.
크롭해서 보면 또 이런 아기자기한 부분도 보인다.

 
12간지를 포함한 여러 동물을 표현한 작품들도 있었다. 전시 초반에 본 작품들과 비교하면 미니미니한 사이즈다. 
 
 

돼지와 개. 색감이 참 현대적이다.
해태인가? 용인가?

 

왠지 모르게 고려대 느낌.
토끼가 유독 많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시계 토끼가 생각나는 작품.
이중섭...?!

 
아이 웨이웨이의 대표작 중 하나인 해바라기 씨앗 (Seeds of Sunflower)도 있었다.
 

아이 웨이웨이의 대표작, 해바라기 씨앗. 이 작품에만 이름도 들어가 있다. 역시 대표작이라 그런가?

 
이 작품은 본래 런던의 테이트 모던 뮤지엄에서 2010년 전시된 대규모 설치 예술 작품이었다. 씨앗은 중국의 소수민족 예술가들과 근로자들이 수작업으로 하나 하나 만들어졌다. 아티스트 혼자 만든 것이 아닌 많은 사람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1억 개의 씨앗! 정말이지 세상에 하나박에 없는 예술 작품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농작물인 해바라기를 선택한 것에도 이유가 있고, 혼자서 만들지 않고 여러 사람이 말도 안 되게 많은 양의 씨앗을 만든 과정에도 이유가 있다.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 웨이웨이의 선택과 씨앗을 만든 과정에서 그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개념 미술의 힘이란 이런 게 아닐까. 
 
미술 회화에 대한 아이 웨이웨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도 있었다. 쨍한 주황색이 돋보이는 뭉크의 '절규' 외에도 여러 작품들이 있었는데, 뮐러 리포트가 하도 충격적이어서 큰 감흥은 느끼지 못했다.
 

뭉크의 아이 웨이웨이화. 주황색의 쨍한 색감이 레고로 더 잘 나타난다.

 

 
금속 예술 작품도 있었는데 그냥 그랬다.
 

레고에 비해선 미미한 감흥이었다.

 
 

팬들이 모아준 레고로 만들어진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들 

 
아이 웨이웨이는 왜 하필 레고를 사용했을까? 레고 측에서 그에게 작품을 만들기 위한 레고 판매를 거부했을 때, 다른 소재를 찾아서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뚝심 있게 팬들이 모아준 레고로 대형 레고 아트를 완성하고 보란듯이 전시까지 했다 (첨부된 링크는 이번 전시보다는 훨씬 이전인 2015년도에 에 쓰인 것으로, 아이 웨이웨이의 호주 전시와 관련이 있다)*. 레고가 (아마도)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아이 웨이웨이에게 판매를 거부한 것과는 많이 대조되는 행동이다. 레고는 자사 제품이 아이 웨이웨이와 아무런 연관도 없기를 바랐을 텐데, 오히려 판매를 거부하면서 이슈화가 되고, 레고 블록 하면 아이 웨이웨이를 떠올릴 수 있게 되어버렸다.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렇게 보면, 돈 많은 기업이라고 해서 꼭 모든 걸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아이 웨이웨이를 통해서 한 사람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이렇게 또 배운다. 
 
 
* 참고 기사 링크: https://m.mk.co.kr/uberin/read.php?sc=30000001&year=2015&no=1020970 

중국 인권운동가 외면한 레고의 속내는?

중국의 설치미술가이자 인권운동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가 글로벌 장난감 업체인 레고의 블록을 작품에 쓰려고 대량으로 주문했으나 레고가 판매를 거부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중국 상

uberin.mk.co.kr

 

앞으로 현대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던 환경, 인권 문제는 정말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다. 정부 주도 차원에서 뭘 하기보다도, 개개인의 의식 수준을 높이고 행동력을 높여야만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상태이다. 심기 불편해지면 안 보면 그만이었던 예전과도 달라서, 지금은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라도 해야 한다. 그런 현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앤디 워홀의 팝아트와 같은 작품이나 고전 유화 회화 작품들은 다소 여유롭고 낭비적인 건 아닐까. 현시대와 맞는 예술은 아이 웨이웨이처럼, 작가 개개인이 중요시하는 가치가 반드시 담겨있으면서, 또한 이 시대에 개개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숙고를 하게 하는 무언가가 아닐까 한다. 생태 감수성과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워주는 방향의 예술 작품, 돈을 많이 들여 제작한 작품보다는 기존의 자원들을 저렴히 활용한 작품들이 더 사람들 마음에 와닿지 않을까. 현대를 살아가는 창작자로서 나도 내가 처한 환경과 상황에서 어떤 알맹이 있는 작품들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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