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

국제갤러리 한옥 공간에서의 프레젠테이션, 양혜규의 동면한옥

티카르트 2023. 10. 3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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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한옥 공간에서 열린 양혜규의 프레젠테이션

 

양혜규의 프레젠테이션 <동면한옥>은 8월 30일부터 10월 8일까지 국제갤러리 한옥 공간에서 진행된 프레젠테이션이다. 

앞으로 전시장으로 쓰일 예정이지만 아직 '휴면' 상태에 있는 한옥 공간에서, '휴면'과 닮은 '동면'을 주제로 동면한옥이라는

미술 프레젠테이션의 형태로 관객에게 보인 듯하다. 

관객으로서도 주제는 정해져있지만, 전시보다는 조금 더 넓고 자유로운 형태의 프레젠테이션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면한옥>에서는 2006년 8월, 인천의 민가에서 양혜규가 처음으로 선보였던 개인전 <사동 30번지> 보다는 조금 더 정돈되고, 작품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작업들을 선보였다고 한다. 인용의 형태를 취하는 이유는 그 개인전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작품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요소들이 설치되어 있었던 개인전이었던 모양이다. 사람이 떠난 지 오래된 사동의 폐가를 청소하고, 전기를 연결해서 깨진 거울, 조명기기, 벽걸이 시계, 종이를 접어 만든 오브제, 형광 안료 등의 장치들이 있었고, <동면한옥>에서도 보였던 빨래 건조대와 같은 오브제가 있었다고 한다. 이번 프레젠테이션과 비슷한 느낌이라면 어떤 장치들이 있었는지 듣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 그려지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이게 미술인가 싶은 생소한 전시로 관객들에게 느껴졌을 것 같다. 

 

동면을 주제로 한 프레젠테이션, 동면한옥

 

'동면'을 주제로 해서 한옥 안에 놓인 작품 하나 하나를 보았을 때는 그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넓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넓은 한옥의 안과 바깥에 상당히 많은 작품들이 놓여있어서 볼 것이 꽤 많았다. 한옥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작품 이름이 쓰여있지 않은데 작품인 것이 분명해서, 한옥 안을 다니면서 작품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당시의 인상은 다양한 재료로 만든 다양한 작품들이 놓여져 있다는 느낌에 그쳤었다. 분명, 한 스타일로 여러 대상을 그린 회화 전시보다 다양한 재료로 만든 여러 입체 작품들로 하나의 주제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주제가 정해져 있어도 모든 것이 딱 그 주제에 들어맞게 작품들이 놓이지 못한 경우는 문학, 음악 등 미술 외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래서 나쁜 프레젠테이션이었냐, 하면 호불호를 섣불리 드러내거나 맞다, 아니다 중 한쪽으로 바로 결론짓기는 어려운 성질의 프레젠테이션이었다. 이렇게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고, 의미를 찾거나 부여하는 것을 즐기는 작가도 있다는 것을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배웠다. 적어도 작가 본인이 각 작품을 만들면서 지루하진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다양한 재료로 다양한 시도를 한 것이 너무 확실했다.

어쩌면 양혜규의 고유성과 정체성은 다른 작가들이 잘 하지 않는 생각이나 시도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험하고, 구현하는 그 행위 자체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동면한옥의 작품 하나 하나  살펴보기 

 

보통 미술 전시를 보러 간다고 하면, 으레 회화 작품이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 양혜규는 회화 작품보다는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재료를 가져다가, 현실에 있을 법하고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본 적은 없는 흥미로운 작품들을 동면한옥에 가져다 놓았다. 새롭기 때문에 신선하고, 그렇지만 낯설어서 이게 좋은 건가, 하고 누군가는 갸우뚱하기도 할 작품들이 꽤 있었다 (작품 이름은 리플릿을 보고 표기할 수 있는 것은 해보았다. 국제갤러리에도 작품 이름은 나와있지 않아서, 작품 이름과 제목이 서로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한다). 

 

<중간 유형 - 서리 맞은 다산의 오발 이무기> 양혜규, 2020.

 

인조 짚을 주재료로 직조했다고 되어 있는데, 짚이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다. 빗자루나 먼지떨이 같은 청소 도구를 만드는 합성 소재로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상당히 스케일이 큰 작품인데, 소재의 형태가 비교적 자유롭게 변형이 가능하니 한정된 공간 안에서 어떤 형태를 잡아 놓거나 분위기를 만들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소재의 색깔이 때 타지 않은 흰색이라 더러워 보이거나 공간이 좁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좋았다. 군데군데 초가 놓여있는 것도 밤에 보면 훨씬 예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조 짚 이무기와 금속 방울의 조합이 상당히 잘 어울린다.

 

인조 짚 이무기와 금속 방울의 조합도 좋다고 생각했다. 방울은 여러 나라의 고대 문화에서 신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샤먼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아이템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무당들이 방울을 사용하는 것을 드라마나 영화 장면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금색 금속 방울과 흰색 인조짚 이무기가 서로 동떨어진 느낌이 들지 않고 상당히 잘 어울리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작가는 속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의도를 담아 두 가지 소재를 매칭했을지 궁금하다.

 

 

<소리나는 행성 주머니 - 홍예 식물 지도> 양혜규, 2023.

 

이 작품은 제목부터가 재미있다. 물론, 관람 당시에 제목이 무엇이었는지는 표기되어 있지 않아 전혀 알 수 없었다. 색감도 다채롭고 예뻐서 크리스마스 트리 대신으로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금속과 식물의 잎들이 같이 쓰여서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든다. 열매 같기도 하고, 선인장 같은 것도 붙어있고, 이게 식물인지, 방울인지, 하나의 생물인지, 사물인지, 모호한 느낌이다. 국제갤러리 리플릿 설명에 따르면, '거대한 벌집이나 열매를 연상시키는 매혹적인 생명체'로, '무지개빛 방울을 가득 단 몸체에 해저, 사막, 열대 등의 지역을 테마화하는 인조 식물을 담은 주머니로 구성되어 인공물과 자연을 동시에 아우른다'고 한다. 전혀 그런 생각까지는 못했지만 내가 느꼈던 느낌과 얼추 비슷하다. 아래로 드리워진 잎들이 그럼 이 신비 생명체의 촉수 같은 것일까?

크기가 꽤 크니, 커다란 호텔 로비에 조명과 함께 놓여 있어도 고급스럽게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방울로 이루어진 커다란 방울 작품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도 독특했다.

 

이건 검은색 파인애플 같다는 생각도 했다.

 

 

 

재미있는 거울.

 

이 거울 작품의 이름은 잘 모르겠다. 그런데 거울 위에 구부러져 붙어있는 수도 부속품 내지는 카메라 지지대 부품 같은 것이 하나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 그림을 그리는 것에 큰 흥미가 없고 입체적인 것을 좋아하는 창작자라면, 이런 작업도 미술 작품이 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것을 천운으로 여기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불과 몇 백 년 전까지만 해도 그림을 아주 아주 잘 그려야 화가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시대였으니 말이다. 

 

양혜규 인스타그램을 찾아보니 저 거울 위 부속품은 선풍기 날개처럼 돌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 (신기해라...!)

 

https://www.instagram.com/reel/Cw0Zw8cLGb0/?igshid=YjVjNjZkNmFjNg==

 

한옥과 굉장히 잘 어울리는 소재로 만든 작품들도 있었는데 상당히 재미있었다.

 

색동저고리를 연상시키는 민속적인 색깔의 리본과 장식이 달린 작품.

 

이걸 보고는 이게 뭔가 했는데,

옆에 있는 것을 보니 사람 형태의 토템인가 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본 적 없는 토속적인 느낌의 작품.

 

누가 봐도 여자의 형테를 한 토템 같은 작품이다. 바퀴가 달린 것도 재미있고. 이동시킬 때 편리함까지 생각하여 붙인 거겠지? 작가는 효율성과 편리성도 고려하는 사람이겠구나 싶다. 작품을 만든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생각해 보게 되는 순간은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 중 하나다. 

 

이건 대체 뭘까?

 

블랙, 레드, 화이트의 색감이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모험>에 나오는 가오나시를 연상시킨다. 혹시 그걸 노렸을까?

다른 작품들에도 쓰인 방울을 실버 그레이로 쓴 것도 재미있다. 방울을 주소재로 많이 사용하는 모양이다.

 

동면한옥의 테라스 공간에 전시된 또 다른 이무기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흰색 인조 짚 이무기의 연작인 것 같은데, 이 이무기는 색상이 어두워서 흠칫할 수 있으니 숨을 천천히 쉬면서 보자.

 

 

 

 

<중간 유형 - 탄소 맞은 수컷 칠발 이무기> 양혜규, 2023.

 

참으로 슬픈 작품 제목이 아닐 수 없다. 탄소 맞은 수컷 칠발 이무기라니! 

탄소는 땅에 가두어 흙을 비옥하게 만들고 식물들의 자양분으로 쓰여야 마땅한데, 공기 중에 떠다니며 생태계에 교란을 일으키고 있으니 문제이다. 이건 본 프레젠테이션과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우리 모두 식물을 키우고 농작물을 자라게 하고 수확하는 과정을 상식으로도 배우고 몸으로도 체험해 볼 필요가 있다. 농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환경에서 우리가 그 정도 상식과 기술은 각자 가지고 있으면서 실천도 해야 앞으로 살아가며 생기는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무기인가 돈벌레인가?

 

사실, 테라스에 나가서 처음 봤을 땐 돈벌레인줄 알았다.

익충이지만 무섭게 생긴 돈벌레...! 

별 생각 없이 봤는데 징그럽거나 무서워졌다면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돌그릇에 담긴 물 근처에 놓인 이무기의 일부도 잘 어울린다.

 

돌그릇에 담긴 물 근처에 놓인 이무기의 일부도 잘 어울린다. 그릇은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인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무기를 만든 인조 짚과 비슷한 무늬를 다른 작품에 이용한 것도 발견했다.

 

걸레 내지는 밧줄이 사용된 작품에 달린 검은색 비늘같은 플라스틱 무언가가 인조 짚 이무기의 무늬와 비슷해 보였다.

작가가 이 무늬를 좋아하는 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건가 싶었다.

 

<소리나는 돌림 무엇이든 흐름 반구 #22> (로 추정) 양혜규, 2022.

 

이 작품을 볼 땐 수도꼭지가 반구에 왜 붙어있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생뚱맞고 신기한데 방울과 수도꼭지가 또 곧잘 어울린다.

이것도 돌리면 회전하면서 딸랑딸랑 소리가 나는 걸까?

스위치 같은 게 있어서 체험해 볼 수 있었으면 더욱 재미있었을 것 같다.

기발한 생각을 하기를 좋아하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사용 가능한 물건 발명으로 이어지지 않는 창작자의 경우 이런 걸 만들면서 재미를 느끼는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이런 작품들을 흥미롭게 보고, 반가워하는 편이다. 어떤 형태의 작업을 하더라도 그런 성격의 작업물을 내놓는 것이 나라는 창작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이다. 동족이 동족을 싫어한다니, 그럴 리가. 이런 귀한 창작자 동족이 있다는 것은 존중하고 소중히 생각한다. 

 

 

흐름을 가진 유의미한 프레젠테이션을 만들려면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프레젠테이션을 현장에서 보던 당시에는 몰랐는데, 사진 찍어둔 걸 보다 보니 공간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고 있어야 흐름을 가진 유의미한 프레젠테이션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작품들을 봤을 땐 소재도 많이 다양하고 작품들 생긴 것들도 다 달라서 어떻게 이것이 하나의 주제를 가진 무언가가 되는 건가 했는데, 공간 안에 있으면서 작품이 서로 서로 부딪히지 않고 조화롭게 놓여있으면서도 그 모두가 작가가 의도한 분위기를 공간 안에서 만들어내는 것이 이 프레젠테이션의 의미였던 것이다. 

 

한옥 실내 유리창에서 보이는 한옥 바깥 처마에 매단 방울도, 괜히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이 프레젠테이션의 흐름을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소리나는 동아줄> 양혜규, 2023. <해와 달이 된 오누이>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작품들의 생김새와 소재는 다 다르지만, 자세히 보면 몇 가지 컬러가 여러 작품에 걸쳐 보인다

 

작품들은 서로 다르게 생겼다. 그렇지만 잡다한 느낌이 들지는 않아서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 보니 아주 많은 컬러가 산만하게 사용되지 않았다. 블랙, 화이트, 레드, 블루, 골드, 노랑 등 기본적이면서도 심플한 색이 주로 쓰였다. 가장 많은 색이 쓰인 것이 신비 생명체와 초록색까지 들어간 색동저고리 색깔 리본을 단 토템 정도였다. 뭔가 조용하면서도 흐름이 멈춘 것 같은 흐름을 만들어내는 요소 중 하나가 또 절제된 색 사용인 것 같았다.

 

이 외에도 벽에 걸린 회화 작품 비슷한 작품들이 꽤 있었다. 그것들은 지금 사진을 올린 작품들과는 또 느낌이 많이 달라서, 다른 포스팅에 따로 올려볼까 한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던 양혜규의 프레젠테이션, <동면한옥>

 

양혜규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니 무엇이든 미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창적인 생각과 시도가 들어간다면 말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유의미한 작품을 만드는 방법이지만, 하나의 공간 안에 여러 입체 작품을 놓고 관객이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참 재미있는 일로 보였다. 책 한 권, 또는 평면 작품 한 점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창작이 아니라는 것.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시도해보고 싶은 창작이 하나 더 늘어난 것 같아 좋기도 하면서 언제 하지, 하면서 조급해지기도 한다. 이렇게 전시를 보면서 무언가를 할 생각을 하게 하는 것 역시, 창작의 씨앗을 심는 멋진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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